1377년(우왕 3) 1월 양광도(楊廣道) 부원수가 되었으며, 2월 왜가 경양(慶陽)에 침구하고 드디어 평택현에 들어오매 나아가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5월 왜가 또 경양과 안성군을 침범하니, 양광도 원수 왕안덕(王安德)이 겁내고 나약하여 싸우지 못하므로, 부원수로서 양천(陽川) 원수 홍인계(洪仁桂)를 불러 후퇴하여 가천역(加川驛)에 주둔하게 하고 적이 돌아가는 길에서 맞아 치려고 하였으나, 적이 알고 다른 길로 갔다. 11월 청주옥(淸州獄)에 내려져 이산(伊山)의 패군한 죄를 국문당하였다.
1383년 9월 왜적이 강릉부와 김화현을 침구하고, 또 회양부와 평강현을 함락시키니, 경성에 계엄을 실시하고 평양과 서해도(西海道)의 정병(精兵)을 징발하여 호위하게 하며, 전정당상의(前政堂相議) 남좌시(南佐時) 등과 함께 그들을 공격하였으나 김화에서 패전하였다.
1377년(우왕 3) 1월 양광도(楊廣道) 부원수가 되었으며, 2월 왜가 경양(慶陽)에 침구하고 드디어 평택현에 들어오매 나아가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5월 왜가 또 경양과 안성군을 침범하니, 양광도 원수 왕안덕(王安德)이 겁내고 나약하여 싸우지 못하므로, 부원수로서 양천(陽川) 원수 홍인계(洪仁桂)를 불러 후퇴하여 가천역(加川驛)에 주둔하게 하고 적이 돌아가는 길에서 맞아 치려고 하였으나, 적이 알고 다른 길로 갔다. 11월 청주옥(淸州獄)에 내려져 이산(伊山)의 패군한 죄를 국문당하였다.
1383년 9월 왜적이 강릉부와 김화현을 침구하고, 또 회양부와 평강현을 함락시키니, 경성에 계엄을 실시하고 평양과 서해도(西海道)의 정병(精兵)을 징발하여 호위하게 하며, 전정당상의(前政堂相議) 남좌시(南佐時) 등과 함께 그들을 공격하였으나 김화에서 패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