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김진(金縝)
  • 안동김씨(安東金氏)
고려 후기의 무관. 명재상이었던 김방경(金方慶)의 증손이고, 판삼사사(判三司事) 김순(金恂)의 손자이며, 상락부원군(上洛府院郡) 김영돈(金永暾)의 아들이다. 부인은 의혜택주(義惠宅主) 문화유씨(文化柳氏)이고, 밀직우부대언(密直右副代言) 유보발(柳甫發)의 딸이다.

1360년(공민왕 9) 홍건적이 서경에 침입해오자 의주와 정주(靜州) 등 인접한 현의 흩어진 백성들을 불러모아 적 150명을 죽이고 그 군량미를 빼앗아 의주를 지킨 공으로 형부상서에 임명되었으나, 1371년 신돈(辛旽)의 당이라 하여 장류(杖流)되었다. 그뒤 1376년(우왕 2)에 경상도원수 겸 도체찰사(慶尙道元帥兼都體察使)에 임명되었으나, 본분을 지키지 않고 경상도의 명기들을 모아 부하 장사들과 더불어 밤낮으로 소주를 즐겨 마시므로 군중(軍中)에서 그 무리들을 소주도(燒酒徒)라고 하였다. 다음해에 왜구가 침입하여 합포영(合浦營)을 불사르고 그 일대의 현을 공격하여 불사르자, 군사들이 '소주도를 시켜 적을 치게 하라. ' 하고 나아가지 않으므로 크게 패하여 단기(單騎)로 도망하였다. 패군한 죄로 서민으로 강등되어 창녕현에 귀양갔다가 곧 가덕도(嘉德島)에 옮겨졌다. 그뒤 왕이 옷과 말을 주고 불러서 돌아오게 하였으나, 최영(崔瑩)의 반대로 유배지에서 풀려나오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