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 조선 초의 무신. 고려시대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달한(達漢)의 아들이다. 고려 우왕 때 음보(蔭補)로 무관에 보임(補任)되었다. 조선 개국초 첨총제(僉摠制)를 거쳐 1409년(태종 9) 강원도첨절제사(江原道僉節制使)를 지내고, 1412년 삼군별시위(三軍別侍衛)가 설치되면서 응양위우이번절제사(鷹揚衛右二番節制使), 곧 동지총제(同知摠制)로 개수(改授)되었다. 1418년(세종 즉위년) 상왕(上王: 태종)의 군권장악을 위요한 시위군(侍衛軍)의 전반적인 개편과 함께 좌, 우패(左右牌)가 좌, 우금위(左右禁衛)로 개칭되면서 좌금위일번절제사가 되었으며, 1421년 봄 어머니의 상으로 사직하였으나 1개월 뒤 좌군총제(左軍摠制)로 기복(起復)하였다. 1423년 병마도절제사를 거쳐 다시 좌군총제가 되었고, 1425년 선종(宣宗)의 등극을 축하하는 하등극사(賀登極使) 좌의정 이원(李原)의 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27년 우군도총제(右軍都摠制)에 승진되었고, 1431년 다시 좌군총제가 되었다. 1432년 삼군도총제부(三軍都摠制府)가 혁거되고 국초의 중추원이 복설되면서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가 되고, 다음해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를 거쳐 1435년 행동지중추원사가 되었다. 1440년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가 되었으나 곧 치사(致仕)하였으며, 궤장(○杖)을 받았다. 성품이 청수(淸粹)하고 강직하여 인망이 있었으며, 1413년으로부터 치사하기까지 강무(講武), 행행(幸行) 때마다 국왕을 호종한 공헌이 있었다. 시호는 호간(胡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