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박병석(朴炳錫)
  • 고령박씨(高靈朴氏),  출생~사망 : 1952 ~  
대한민국의 기자 출신 정치인. 제21대 국회의원 중 최다선인 6선 의원이며, 제21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을 역임했다.

1952년 1월 25일 충청남도 대전시(現 대전광역시 동구)에서 출판인 박홍구 슬하 3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대전삼성국민학교, 대전중학교, 대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법률학과를 졸업했다.

1975년 중앙일보에 입사하였고, 사회부 기자, 경제부 기자, 홍콩 특파원, 정치부 차장, 산업부 부장 등을 역임했다. 특히 홍콩 특파원 시절인 1989년에 천안문 사태를 취재하여 '중국 자오쯔양 총리 체포 구금 기사'로 한국기자상을 수상했다.

1998년 4월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하여 수석부대변인과 정책위 부의장을 지냈고, 1999년에는 서울특별시 정무부시장에 임명되어 2000년까지 역임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고향인 대전광역시 지역구 중에서 서구 갑 선거구에 새천년민주당 공천을 받아 현역 국회의원인 자유민주연합 이원범 후보를 꺾고 당선되면서 처음으로 정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새천년민주당에서 원내부총무, 대변인 등을 역임하였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노무현 당시 새천년민주당 후보의 지지율이 급락하자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를 촉구하며 후보 단일화 협의회에 참여했으나, 여론조사 경선으로 노무현이 단일 후보로 확정되자 그대로 잔류하였다. 2003년 새천년민주당 내의 개혁 소장파 세력 대부분이 열린우리당을 창당하자 여기에 참여하는 이례적인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당선되어 재선이 되었으며, 2006년부터 2008년까지 국회 정무위원장을 역임하였다.

한나라당 이명박이 압도적인 차이로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을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됨에 따라, 한나라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했던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통합민주당 간판으로 당선되면서 3선 고지에 올랐고 같은 해부터 2009년까지 민주당 정책위의장을 역임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역시 민주통합당 후보로 당선되어 4선 고지에 올랐다. 그리고 2014년까지 제19대 국회 전반기 국회부의장을 역임하였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으며, 2018년 5월 10일, 제20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에 공식 출마했으나 당내 경쟁자인 6선 의원인 문희상 전 의원에게 패해 탈락했다.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단수공천을 받아 6선에 성공했다. 그리고 2020년 6월 5일, 제21대 국회의 첫 본회의인 379회 국회 임시회에서 총 투표 수 193표 중 191표를 얻어 국회의장에 최종적으로 선출되었다.

2022년 3월 대선 패배 후 170석의 의석을 보유한 더불어민주당이 검수완박 드라이브를 걸면서 정의당과 함께 박병석 전 국회의장에게로 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러자 4월 20일 예정되었던 북미 순방을 취소한 뒤 4월 22일 수사 기소 분리 법안의 합의안을 제시했고, 국민의힘과 민주당 모두 이를 수용했다.

2022년 5월 29일, 마지막 본회의를 연 후 제21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으로서의 임기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