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이완구(李完九)
  • 여주이씨(驪州李氏) 26세손,  출생~사망 : 1950 ~ 2021
제43대 국무총리. 충청남도 도지사. 국회의원. 여주이씨 교위공파 26세손이다.

1950년 7월 16일 충청남도 청양군 비봉면에서 태어났다. 종교는 천주교이며, 세례명은 바오로이다. 홍성의 덕명국민학교와 대전중학교 졸업후 서울로 올라가 양정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에 진학했으며, 재학중 행정고시 합격한다. 충청남도 홍성군청 사무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홍성군청에서 사무관으로 근무중 군생활을 하였다. 그 후 경찰로 옮겨 홍성경찰서 서장으로 근무하게 된다. 1986년 ~1989년 약 3년간 로스앤젤레스 주재 총영사관 내무영사로 근무한적있으며, 충청북도지방경찰청장, 충청남도지방경찰청장을 지냈다.

1995년 경찰복을 벗고, 신한국당의 전신 민주자유당에 입당하면서 정치권에 뛰어든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고향이 있는, 충남 청양군 - 홍성군 선거구로 출마했으며 자유민주연합 조부영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당시 충청도 일대 특히, 충청남도지방에 자유민주연합의 녹색돌풍이 거셌는데 충남 지방 유일한 신한국당 당선자여서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정권교체로 공동여당이 된 자유민주연합으로 당적을 옮기고 대변인까지 맡게 된다. 2000년 재선에 성공한다. 2002년 자민련을 탈당해 한나라당으로 복당했고, 후에 대표가 된 박근혜와 인연을 맺게 된다.

2006년 시행한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의 강세에 힘입어 충남지사에 당선되었다. 참여정부는 세종특별자치시 출범에 박차를 가했지만, 뒤이은 이명박 정부는 세종시 계획안을 수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이완구는 격렬히 반발했고 지사직을 사퇴했다. 2013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 출마하여 국회로 컴백했고 새누리당 원내대표직을 맡기도 했다.

정홍원 총리의 사임 이후 청와대의 눈에 띄어 국무총리 후보로 나서게 되었다. 당시 국무총리 청문회에선 일명 언론외압의혹이 불거져 곤욕을 치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역 정치인이란 배경과 본인 관련 논란에 대해 대질 전 해명하는 등의 적극적 모습을 앞세워 끝내 청문회를 통과했다.

국무총리가 되자마자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 강하게 정치인들을 압박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땐 친박계내의 충청도 지역 유력 인사로 꼽혔다. 하지만 2015년 경남기업 성완종 회장이 자살하며 "이완구 총리가 금품수수를 받았다"는 메모를 남겨 금품수수 의혹에 연루되었으나 본인은 강하게 부정했다. 그러나 2015년 2월 17일부터 4월 27일까지 70일 단명 총리라는 불명예를 안고 사임하고 만다. 이 사건으로 인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2016년 9월 27일 2심에서 무죄를 선고했고, 대법원은 2017년 12월 22일 검사의 상고를 기각하여 무죄를 확정했다.

2021년 10월14일 혈액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향년 71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