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정운찬(鄭雲燦)
  • 연일정씨(延日鄭氏),  출생~사망 : 1947 ~  
제40대 국무총리. 경제학자.

1947년 3월 21일 충청남도 공주에서 출생했다.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잠시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조교수 생활을 하다가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대학교 경제학부에서 강의해 왔다.

스승인 조순과 마찬가지로 케인즈 주의자로 분류된다. 정부의 개입을 반대하는 신자유주의와는 상반되는 성향. 신문기고를 통해 자주 재벌개혁을 부르짖었다. "민주화를 위한 교수 협의회" (민교협)에 참여하여 '진보 성향을 가졌다'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실제로 그와 상관된 일은 위의 조선일보 신문기고 이외에는 한 적이 거의 없다.

민주통합당 최재성 의원에 따르면 KCI급 논문은 9편, SSCI급 논문은 1편이라고 하는 바 일각에서 주장한 것에 비하면 연구성과가 꽤 있는 편이다. 조순과 공저하여 각 대학에서 교과서로 쓰는 "경제학 원론"과 김영식과 공저한 "거시경제론"이 유명하다. 이후 현재 출판되는 11판까지 계속해서 참여해 온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 서울대학교 총장(제23대. 2002년 7월~2006년 7월)을 역임했으며, 반엘리트주의 성향을 지닌 노무현 정부와 정책상에서 부딪쳐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었다. 민교협 소속으로 당선되어 진보세력의 기대를 모았으나, 딱히 내세울 업적은 별로 없다. 지역균형선발제도 도입으로 스누라이프에서 끊이지 않는 개싸움논쟁을 일으킨 것 정도가 가장 기억에 남는 업적. 서울대 미대 창립자의 친일 문제를 건드려 해임된 김민수 교수가 복직하는 것을 막았고, 김 교수가 해임무효소송에서 이기자 복직시켰다.

이후 이명박 정부에서 제40대 국무총리를 역임하였다. 그의 국무총리 취임은 이명박 대통령과의 정치적 딜이라는 분석이 많다. 그 딜의 내용은 이명박 대통령이 정운찬 교수를 총리로 임명해 주면 충청도 출신의 정 총리가 앞장서서 행정기관의 세종특별자치시 이전을 반대해 준다는 것이다. 용산참사 등 이런저런 일을 정리하느라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무총리 재임 시절 천안함 피격사건을 겪기도 했다. 그리고 김영삼이 이명박을 발탁한 인물이기도 하고, 김영삼과 이명박이 가까웠던 만큼 국무총리 재임 시절에는 김영삼과도 상당히 교류가 있었던 편이다.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을 마지막으로 공직생활을 끝내고 현재는 자신이 설립한 동반성장연구소를 운영하면서 서울대학교 경제학부에서 명예교수로 있다.

2012년 18대 대선 때는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였다. 나중에 그는 자신의 동의 없이 문재인 대선캠프에서 자신이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다는 발표를 냈다고 주장했으나 이명박 정부 시절 국무총리였던 인연이 있어서인지 이명박 前 대통령 및 친이계에서 이명박의 왼팔이라 불리는 이재오와 현재도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늘푸른한국당 창당 준비 때부터 이재오, 최병국과 행적을 함께하기도 했다.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를 선언 했다가 4월 14일 돌연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