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경기고등학교 졸업하고, 1971년 서울대학교 경제학 학사, 1979년 하버드 대학교 경제학 석사, 1984년 하버드 대학교 경제학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 재학 중인 1970년 제8회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경제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1996년 12월부터 1997년 3월까지 특허청장을 지냈다. 1997년 3월부터 1998년 3월까지 통상산업부 차관으로 근무하였다.
2000년 12월부터 2001년 12월까지 OECD 대표부 대사를 지냈다. 2002년 2월부터 같은 해 7월까지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을 역임하였다. 2004년 2월부터 2005년 3월까지 국무조정실장을 지냈다.
2005년 3월부터 2006년 7월까지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2006년 3월 이해찬 국무총리가 삼일절 골프 사건으로 사퇴하자 같은 해 4월 한명숙 국무총리가 임명될 때까지 국무총리 권한대행을 겸임하였다. 부총리 퇴임 직후인 2006년 8월엔 한미 FTA 체결지원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한미 FTA가 체결되도록 했다.
2007년 4월부터 2008년 2월까지 참여정부의 마지막 국무총리(제38대)를 지냈다. 열린우리당의 붕괴로 사실상 여소야대 형국에 봉착했음에도 무난히 인사청문회를 통과해 인준을 받았고, 총리 재임 기간 동안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렸으며 당시 북한의 내각 총리였던 김영일과 남북총리회담을 하기도 했다. 특히 참여정부의 초대 총리였던 고건 전 국무총리와 마찬가지로 총리직 재직 중에도, 행정의 달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정권교체로 출범한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주 미국 대사를 역임하면서 보수·진보 정권 가리지 않고 실무형 인사로 중용되는 모습을 보여줬다. 대사직 퇴임 직후 2012년 2월부터 2015년 2월까지 한국무역협회 회장을 지냈다. 2015년 6월 청소년적십자 사업후원회 고문, 2015년 11월 제3대 기후변화센터 이사장의 지내는 등 2022년까지 다양한 사회기관에서 활동하였다.
윤석열 정부의 국무총리로 재직하던 2023년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의 주도로 해임 건의안이 국회를 통과하였으며, 이는 헌정 사상 최초의 국무총리 해임 건의안 통과 사례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윤석열 전 대통령의 해임 거부로 총리직을 유지했다.
2024년 4월 10일 치러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집권여당 국민의힘이 탄핵 저지선을 사수하는 108석에 그치며 참패하자, 국정 쇄신을 위해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사퇴를 표명했으나 대통령이 사퇴를 반려하면서 유임되었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가 6시간여 만에 해제한 뒤 여론의 거센 반발과 역풍을 맞자, 국무위원 전원의 사퇴 표명을 반려하며 국정 운영에 매진해줄 것을 당부하였다.
2024년 12월 1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의 가결로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었으나, 2024년 12월 27일,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소추의 가결로 직무가 정지됐다. 이듬해 3월 24일, 헌재에서 기각 결정이 나며 다시 직무에 복귀하게 됐다.
2025년 4월 4일, 윤석열이 대통령직에서 파면되면서 제21대 대통령 선거 전까지 대통령 권한대행을 수행하기로 하였으나, 2025년 5월 1일, 같은 날 24시를 기하여 국무총리 겸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혔으며, 2025년 5월 2일, 대한민국 제21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했으나 출마가 무산되었다.
1949년 6월 18일 전라북도 전주시에서 태어났다.
1967년 경기고등학교 졸업하고, 1971년 서울대학교 경제학 학사, 1979년 하버드 대학교 경제학 석사, 1984년 하버드 대학교 경제학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 재학 중인 1970년 제8회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경제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1996년 12월부터 1997년 3월까지 특허청장을 지냈다. 1997년 3월부터 1998년 3월까지 통상산업부 차관으로 근무하였다.
2000년 12월부터 2001년 12월까지 OECD 대표부 대사를 지냈다. 2002년 2월부터 같은 해 7월까지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을 역임하였다. 2004년 2월부터 2005년 3월까지 국무조정실장을 지냈다.
2005년 3월부터 2006년 7월까지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2006년 3월 이해찬 국무총리가 삼일절 골프 사건으로 사퇴하자 같은 해 4월 한명숙 국무총리가 임명될 때까지 국무총리 권한대행을 겸임하였다. 부총리 퇴임 직후인 2006년 8월엔 한미 FTA 체결지원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한미 FTA가 체결되도록 했다.
2007년 4월부터 2008년 2월까지 참여정부의 마지막 국무총리(제38대)를 지냈다. 열린우리당의 붕괴로 사실상 여소야대 형국에 봉착했음에도 무난히 인사청문회를 통과해 인준을 받았고, 총리 재임 기간 동안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렸으며 당시 북한의 내각 총리였던 김영일과 남북총리회담을 하기도 했다. 특히 참여정부의 초대 총리였던 고건 전 국무총리와 마찬가지로 총리직 재직 중에도, 행정의 달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정권교체로 출범한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주 미국 대사를 역임하면서 보수·진보 정권 가리지 않고 실무형 인사로 중용되는 모습을 보여줬다. 대사직 퇴임 직후 2012년 2월부터 2015년 2월까지 한국무역협회 회장을 지냈다. 2015년 6월 청소년적십자 사업후원회 고문, 2015년 11월 제3대 기후변화센터 이사장의 지내는 등 2022년까지 다양한 사회기관에서 활동하였다.
윤석열 정부의 국무총리로 재직하던 2023년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의 주도로 해임 건의안이 국회를 통과하였으며, 이는 헌정 사상 최초의 국무총리 해임 건의안 통과 사례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윤석열 전 대통령의 해임 거부로 총리직을 유지했다.
2024년 4월 10일 치러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집권여당 국민의힘이 탄핵 저지선을 사수하는 108석에 그치며 참패하자, 국정 쇄신을 위해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사퇴를 표명했으나 대통령이 사퇴를 반려하면서 유임되었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가 6시간여 만에 해제한 뒤 여론의 거센 반발과 역풍을 맞자, 국무위원 전원의 사퇴 표명을 반려하며 국정 운영에 매진해줄 것을 당부하였다.
2024년 12월 1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의 가결로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었으나, 2024년 12월 27일,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소추의 가결로 직무가 정지됐다. 이듬해 3월 24일, 헌재에서 기각 결정이 나며 다시 직무에 복귀하게 됐다.
2025년 4월 4일, 윤석열이 대통령직에서 파면되면서 제21대 대통령 선거 전까지 대통령 권한대행을 수행하기로 하였으나, 2025년 5월 1일, 같은 날 24시를 기하여 국무총리 겸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혔으며, 2025년 5월 2일, 대한민국 제21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했으나 출마가 무산되었다.
2025년 5월 10일 국민의힘에 입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