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한명숙(韓明淑)
  • 청주한씨(淸州韓氏),  출생~사망 : 1944 ~  
제37대 국무총리. 사회운동가. 정치인.

1944년 3월 24일 평안남도 평양부에서 출생하였따.

6살 때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부모를 따라 월남하였다. 이후 서울에서 유년시절을 보냈으며 서울영등포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마라톤 선수로도 활약했으며, 달리기를 잘해 늘 릴레이 선수로 뽑혔다고 한다.

1957년 서울영등포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960년 서울 정신여자 중학교, 1963년 정신여자 고등학교 졸업하였다. 1967년 2월 이화여자대학교 불문학과를 졸업했다. 1977년 2월 한국신학대학교 선교신학대학원에서 신학석사학위를 받은 뒤 다시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으로 진학하여 1985년 2월 여성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 뒤 미국에 유학, 1999년 8월에는 미국 뉴욕유니온 신학대학교 객원연구원 자격을 획득하고 귀국하였다.

이화여자대학교 불문학과 재학 중에 남편 박성준을 만나 1967년 24세에 결혼하였으나, 6개월만에 박성준이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수감되어 1981년에 석방될때까지 13년간 남편을 옥바라지 하였다. 졸업 후 1970년 이화여자대학교 기숙사 사감으로 재직 중에 학생들의 시위를 지원한 것이 문제가 되어 사감을 그만두고 한국 크리스천 아카데미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1974년 한국 크리스천 아카데미 여성분과의 간사가 된 후 1977년 한국신학대학교 선교신학대학원 신학석사를 취득한다. 하지만 1979년 체제 비판적인 이념서적을 학습·유포한 혐의로 이우재, 신인령 등 아카데미의 동료 간사들과 함께 구속되어 2년 6개월간의 투옥 뒤 1981년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석방되었다.

김대중 집권 이후 16대 국회 비례대표로 정계 입문 했고,여성부 초대장관을 역임했다. 2003년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환경부 장관을 맡았다. 2006년 3월 15일 이해찬 총리가 사임함에 따라 3월 24일 참여정부의 세 번째 총리에 지명되었다. 2006년 4월 19일 대한민국 국회의 총리임명 동의안이 가결되어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국무총리가 되었다. 2007년 3월 7일 총리직을 사임하였다.

2007년 6월 18일, 2007년 12월에 있을 제17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하면서 대통합민주신당의 후보로 올랐다. 그러나 9월 14일 이해찬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며 후보단일화를 위해 경선에 불참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에 출마했으나 백성운에게 패하여 낙선했다.

2010년 6월 지방선거에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으나, 오세훈 후보에게 패하여 낙선했다. 2012년 1월 16일 민주통합당 초대 대표에 선출되어 활동하였으나, 2012년 총선에 공천 실패로 사퇴했다.

2009년 12월 총리 재직 시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에게 인사청탁으로 5만 달러를 받았다는 뇌물죄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2013년 3월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2007년 3~8월 세 차례에 걸쳐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에게서 불법 정치자금 9억여 원을 받은 혐의로 2010년 7월 불구속 기소되어 2015년 8월 2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징역 2년과 추징금 8억 8천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유죄가 확정되어 교도소에 수감되면서 대한민국 헌정 사상 실형을 살게 되는 첫 총리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