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이해찬(李海瓚)
  • 전주이씨(全州李氏),  출생~사망 : 1952 ~  
제36대 국무총리. 국회의원, 정치인

1952년 7월 10일에 충청남도 청양면에서 아버지 이인용(李寅鎔)과 어머니 박양순(朴良順)의 3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의 고향은 충주이다. 조선 14대 왕 선조의 생부 덕흥대원군의 14대손이다.

아버지 이인용은 일본 유학을 다녀왔지만 끝까지 창씨개명을 거부했다. 해방 이후 청양면장을 지냈으며 4.19 혁명 때까지 재직하였다. 이해찬은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1965년에 청양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상경하여 1968년 덕수중학교를 졸업했다.

1971년 용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섬유공학과를 다녔으나 적성에 맞지않아 자퇴하였고, 이듬해 사회과학대학 사회학과로 재입학했다. 정계에 입문하기 전까지는 주로 운동권에서 활동했는데, 1972년 10월 유신을 계기로 학생운동에 투신했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투옥되어 약 1년을 복역하고 출소했다. 이 사건 후 무역회사를 다니기도 했고, 동아일보에서 해직된 기자들이 차린 번역실에서 번역을 하기도 했으며, 앰네스티 한국지부에서 일하는등 재야 인사로 지냈다.

1978년 사회학과 학술모임에서 만나 사귀어 오던 김정옥과 결혼하고 광장서적을 설립하였다. 출판사 '한마당'과 '평민서당'을 설립했으나 불온서적을 출판했다는 이유로 등록을 취소당하여 돌베개 출판사를 설립하고 사회과학 서적을 주로 출판했다.

그러다가 민청학련 사건으로 제적이 되었다가 해금 조치되면서 1980년 복학하여 복학생협의회 회장을 맡았는데, 그해 6월 전두환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에 연루되어 재판을 받고 투옥되었다가 수감 2년 6개월 만에 크리스마스 특사로 석방되었다. 이후 재야운동에 본격적으로 투신하여 그는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총무국장에 선출되었다. 정권은 그를 요시찰 인물로 삼아 감시했으나 굴하지 않고 반독재운동과 출판 활동 등에 종사했다.

1985년에는 처음 서울대를 입학한지 14년만에 졸업하였다. 1987년말 한겨레신문 창간발기인을 지냈다. 1987년 이해찬은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집행위원에 선출되었고, 6월 항쟁 당시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상황실장을 맡아 일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평민당 후보로 서울 관악구에서 당선되었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주로 야당이었지만 서울시 정무부시장으로 일했고 15대 대선에서 김대중 당시 후보의 선거대책본부 부본부장을 맡아 정권 교체에 공을 세웠다. DJP연합 당시 정책 공조 협상으로 이해찬 의원은 선거 전략가로 더 알려지게 된다.

김대중 후보의 당선으로 여당의 일원이 된 이후로는 교육부 장관으로서 주로 고교 평준화, 연합고사 폐지, 보충수업 폐지 등의 개혁안을 추진하고 공무원 성과급 제도를 수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성급한 개혁으로 '이해찬 세대'를 대거 양성하여 그들이 수능에서 참패하게 했다는 비판을 받았으며, 특히 교육 정책에 대해서는 그의 이름을 딴 이해찬 세대를 양성하는 데 일조했다.

국민의 정부가 저물 때쯤 노무현을 지지하였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하여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이 되었다. 고건 당시 국무총리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로 대통령 권한 대행을 맡고 얼마 안 가 국무총리에서 사임하자 후임 국무총리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2006년 3.1절 골프 파문으로 인해 총리직을 사퇴하였다. 총리 퇴임 이후 이해찬은 10월 27일 대통령 정무특별보좌관에 기용되어 재입각했다. 이후 열린우리당 상임고문, 열린우리당 동북아평화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2007년 6월 19일,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것을 선언했으나, 대통합민주신당의 당내 경선에서 정동영, 손학규에 이어 3위에 그쳤다. 2008년 대한민국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 불출마하고 대통합민주신당을 탈당했다. 2009년 시민주권 상임대표, 2011년 12월 시민통합당 창당을 주도하였다. 2011년 12월 21일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으로 위촉됐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세종특별자치시 선거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2012년 6월 9일 열린 민주통합당 임시전당대회에서 이해찬은 경쟁상대인 김한길 후보를 누르고 당 대표에 당선되었다. 제18대 대통령 선거 관련 야권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지도부 총사퇴를 결의하고 민주통합당 당 대표 직을 사퇴했다. 2016년 4월 무소속으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세종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