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는 1962년 2월 26일에 경상남도 밀양시 내일동 142번지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아버지 안영모와 어머니 박귀남 사이에서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학창 시절은 부산에서 보냈다. 학창 시절에 60명 중 30등을 할 정도로 평범했으며 특별히 잘 하는 것이 있는 학생은 아니었다. 하지만 독서를 매우 좋아했다. 부산동성국민학교 재학 시절 학교 도서관의 책을 매일 몇 권씩 읽어 결국 도서관에 있는 책은 거의 다 읽게 됐다. 도서관 사서는 매일 몇 권씩 대출과 반납을 하는 안철수가 장난친다고 생각해서 책 대출을 거부할 정도였다. 안철수는 "당시 책의 페이지수, 발행 년월일, 저자까지 모두 다 읽고, 바닥에 종이가 떨어져 있으면 그것마저도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활자 중독증이었던 것 같다."라고 회고했다. 그러나 수업 교과서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과학책이나 소설책을 좋아해 주로 읽었는데 책을 좋아했던 탓인지 사춘기도 없었다고 한다.
중간 정도의 성적을 유지하다가 고등학교 3학년 때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기 시작하면서 1등을 차지하고 1980년에 서울대 의대에 입학했다. 그러나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이 많은 의대에서 다른 학생들과 경쟁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1986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고, 이후 서울대학교 대학원 의학과 생리학 교실에서 기초의학을 전공했다. 1988년 석사 학위를, 1991년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원래 직업은 의사였다. 하지만 3학년 재학 중이던 1982년 가을에 처음으로 컴퓨터를 접하면서 이후 컴퓨터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그당시 컴퓨터의 가격은 안철수가 감당해내기에는 상당히 비쌌다. 그래서 그는 정말 돌아갈수있는 최소한의 부품만 갖춘 컴퓨터를 겨우겨우 구매했고 이후 컴퓨터에 빠졌다고 한다.
어느날 본인의 컴퓨터에 바이러스가 침투한적이 한번 있었는데 이는 안철수의 인생을 바꾼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국내 최초로 컴퓨터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안티 바이러스 V3를 개발하고 이를 백신으로 불리게 만든 한국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는 프로그래머다. 이후 IT기업 안랩(안철수연구소)을 만들어 CEO가 되었다.
2005년 안철수연구소 CEO직에서 물러난 뒤 KAIST 교수,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을 지냈다. 이러한 다채로운 이력이 알려지면서 시민들의 관심을 받았고, 이후 시골의사로 유명한 박경철 작가와 방송인 김제동과 더불어 청춘콘서트를 진행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높은 지지를 얻게 된다. 이러한 지지를 자산으로 2012년 9월 19일, 정치권에 입문하였다.
새정치민주연합 합류 이후 공동 당대표로서 제6회 지방선거에서 일정 수준의 성과를 내었으나, 2014년 재보궐선거에서 패배한 후 대표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이후 2015년 2.8 전당대회로 시작된 문재인 대표 체제와의 지속적인 갈등을 빚다 결국 탈당하여 2016년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국민의당 공동대표로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지휘하여 서울 노원구 병에서 당선되고, 의석 38석이라는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리베이트 파문으로 당대표 직에서 사퇴했다. 19대 대선 경선에서 국민의당 후보로 선출되어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21.41% 득표를 기록하며 3위로 낙선했다. 이후 국민의당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국민의당 대표로 선출된 이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대비하여 바른정당과 연대 논의를 시작했으며, 이는 합당 논의로 이어졌다. 그러나 호남계에서 강한 반발이 있었고, 결국 분당 사태까지 겪게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당을 강행하여 바른미래당을 창당하게 되며, 이후 당대표직을 사퇴하여 바른미래당 인재영입위원장을 맡고 동시에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득표율 19.55%로 자유한국당 김문수 후보에게조차 밀린 3위로 낙선하였다. 이후 독일 뮌헨 근교의 막스 플랑크 혁신과 경쟁 연구소에 초빙 연구원 자격으로 간 연수를 끝마치고,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법, 과학과 기술 프로그램 방문학자로 활동하였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2020년 1월 2일, 정계 복귀를 선언하고, 1월 19일 귀국, 1월 29일 바른미래당을 탈당하였다. 이후 창당작업에 착수하였고, 2020년 2월 23일 '국민의당'을 창당하여 대표가 되었다. 21대 총선에서 국민의당 선거운동을 하였고, 지지율 6.8%를 얻어 3석을 배분받아 원내 4당에 안착하였다.
2021년 11월 1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으나, 2022년 3월 3일 윤석열 후보와 단일화 했다. 윤석렬이 제20대 대통령에 당선하고, 2022년 3월 12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직을 수락하였다.
안철수는 1962년 2월 26일에 경상남도 밀양시 내일동 142번지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아버지 안영모와 어머니 박귀남 사이에서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학창 시절은 부산에서 보냈다. 학창 시절에 60명 중 30등을 할 정도로 평범했으며 특별히 잘 하는 것이 있는 학생은 아니었다. 하지만 독서를 매우 좋아했다. 부산동성국민학교 재학 시절 학교 도서관의 책을 매일 몇 권씩 읽어 결국 도서관에 있는 책은 거의 다 읽게 됐다. 도서관 사서는 매일 몇 권씩 대출과 반납을 하는 안철수가 장난친다고 생각해서 책 대출을 거부할 정도였다. 안철수는 "당시 책의 페이지수, 발행 년월일, 저자까지 모두 다 읽고, 바닥에 종이가 떨어져 있으면 그것마저도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활자 중독증이었던 것 같다."라고 회고했다. 그러나 수업 교과서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과학책이나 소설책을 좋아해 주로 읽었는데 책을 좋아했던 탓인지 사춘기도 없었다고 한다.
중간 정도의 성적을 유지하다가 고등학교 3학년 때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기 시작하면서 1등을 차지하고 1980년에 서울대 의대에 입학했다. 그러나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이 많은 의대에서 다른 학생들과 경쟁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1986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고, 이후 서울대학교 대학원 의학과 생리학 교실에서 기초의학을 전공했다. 1988년 석사 학위를, 1991년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원래 직업은 의사였다. 하지만 3학년 재학 중이던 1982년 가을에 처음으로 컴퓨터를 접하면서 이후 컴퓨터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그당시 컴퓨터의 가격은 안철수가 감당해내기에는 상당히 비쌌다. 그래서 그는 정말 돌아갈수있는 최소한의 부품만 갖춘 컴퓨터를 겨우겨우 구매했고 이후 컴퓨터에 빠졌다고 한다.
어느날 본인의 컴퓨터에 바이러스가 침투한적이 한번 있었는데 이는 안철수의 인생을 바꾼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국내 최초로 컴퓨터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안티 바이러스 V3를 개발하고 이를 백신으로 불리게 만든 한국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는 프로그래머다. 이후 IT기업 안랩(안철수연구소)을 만들어 CEO가 되었다.
2005년 안철수연구소 CEO직에서 물러난 뒤 KAIST 교수,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을 지냈다. 이러한 다채로운 이력이 알려지면서 시민들의 관심을 받았고, 이후 시골의사로 유명한 박경철 작가와 방송인 김제동과 더불어 청춘콘서트를 진행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높은 지지를 얻게 된다. 이러한 지지를 자산으로 2012년 9월 19일, 정치권에 입문하였다.
새정치민주연합 합류 이후 공동 당대표로서 제6회 지방선거에서 일정 수준의 성과를 내었으나, 2014년 재보궐선거에서 패배한 후 대표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이후 2015년 2.8 전당대회로 시작된 문재인 대표 체제와의 지속적인 갈등을 빚다 결국 탈당하여 2016년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국민의당 공동대표로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지휘하여 서울 노원구 병에서 당선되고, 의석 38석이라는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리베이트 파문으로 당대표 직에서 사퇴했다. 19대 대선 경선에서 국민의당 후보로 선출되어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21.41% 득표를 기록하며 3위로 낙선했다. 이후 국민의당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국민의당 대표로 선출된 이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대비하여 바른정당과 연대 논의를 시작했으며, 이는 합당 논의로 이어졌다. 그러나 호남계에서 강한 반발이 있었고, 결국 분당 사태까지 겪게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당을 강행하여 바른미래당을 창당하게 되며, 이후 당대표직을 사퇴하여 바른미래당 인재영입위원장을 맡고 동시에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득표율 19.55%로 자유한국당 김문수 후보에게조차 밀린 3위로 낙선하였다. 이후 독일 뮌헨 근교의 막스 플랑크 혁신과 경쟁 연구소에 초빙 연구원 자격으로 간 연수를 끝마치고,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법, 과학과 기술 프로그램 방문학자로 활동하였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2020년 1월 2일, 정계 복귀를 선언하고, 1월 19일 귀국, 1월 29일 바른미래당을 탈당하였다. 이후 창당작업에 착수하였고, 2020년 2월 23일 '국민의당'을 창당하여 대표가 되었다. 21대 총선에서 국민의당 선거운동을 하였고, 지지율 6.8%를 얻어 3석을 배분받아 원내 4당에 안착하였다.
2021년 11월 1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으나, 2022년 3월 3일 윤석열 후보와 단일화 했다. 윤석렬이 제20대 대통령에 당선하고, 2022년 3월 12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직을 수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