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10월 5일 전라남도 해남에서 태어났다. 1968년 해남고등학교를 중퇴해, 1972년 서울 양정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1976년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1981년 고려대학교 사학과 학사 과정을 받았다.
1969년 9월 제21회 종합선수권 대회에 참가 개인혼영 200m에서 처음으로 대한민국 신기록을 세운 후 1970년과 74년 아시안게임 자유형 400m와 1,500m에서 2연패하며 한국 수영계에 큰 획을 그었다. 선수 시절 동안 평영 100m와 200m, 배영 100m 세 종목을 제외한 모든 종목에서 한국 신기록을 50차례나 세웠다. 30대 후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접영 200m에서 동메달을 차지했던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선수생활 은퇴 뒤에는 1980년과 82년에 대한해협과 도버해협을 횡단하는 데 성공했다. 광복 60주년이던 2005년에는 아들 조성웅, 조성모 씨와 함께 울릉도부터 독도까지의 93km를 18시간만에 횡단했으며 2008년에는 50대 중반을 넘어선 나이에 민족대표 33인을 기리는 의미로 독도를 33바퀴 헤엄쳐 돌기도 했다.
'아시아의 물개'로 불렸던 그는 2009년 8월 4일 전남 해남군 계곡면 법곡리에 있는 자신의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타계했다. 형년 57세.
1952년 10월 5일 전라남도 해남에서 태어났다. 1968년 해남고등학교를 중퇴해, 1972년 서울 양정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1976년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1981년 고려대학교 사학과 학사 과정을 받았다.
1969년 9월 제21회 종합선수권 대회에 참가 개인혼영 200m에서 처음으로 대한민국 신기록을 세운 후 1970년과 74년 아시안게임 자유형 400m와 1,500m에서 2연패하며 한국 수영계에 큰 획을 그었다. 선수 시절 동안 평영 100m와 200m, 배영 100m 세 종목을 제외한 모든 종목에서 한국 신기록을 50차례나 세웠다. 30대 후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접영 200m에서 동메달을 차지했던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선수생활 은퇴 뒤에는 1980년과 82년에 대한해협과 도버해협을 횡단하는 데 성공했다. 광복 60주년이던 2005년에는 아들 조성웅, 조성모 씨와 함께 울릉도부터 독도까지의 93km를 18시간만에 횡단했으며 2008년에는 50대 중반을 넘어선 나이에 민족대표 33인을 기리는 의미로 독도를 33바퀴 헤엄쳐 돌기도 했다.
'아시아의 물개'로 불렸던 그는 2009년 8월 4일 전남 해남군 계곡면 법곡리에 있는 자신의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타계했다. 형년 57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