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3월 22일 강원도 삼척군 근덕면에서 태어났다. 강릉 명륜(明倫) 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 체육과를 졸업하고, 1990년 육상 경기에 입문하여 주로 트랙 장거리 종목에 뜻을 두고 단련했다. 그 해의 전국 체전의 5,000m, l0,000m에서 각각 2위에 입상하여 장거리의 기대주로 데뷔했다.
1991년 제62회 동아 마라톤 대회에 처음으로 출전, 2시간 12분 35초의 기록으로 3위에 입상하여 마라톤에서의 가능성을 보였다. 계속 트랙 장거리 종목을 통하여 실력을 쌓고 이 해 7월 영국 세필드에서의 하계 유니버시아드에 참가하여 2시간 12분 40초의 기록으로 당당히 우승했다. 한편 아시아 선수권 대회 10,000m, 일본 나가사키(長崎)의 규슈(九州) 역전 경주 구간에서 우승하는 등 단연 장거리에서 소질을 보였다.
1992년 2월에는 일본 벳푸 오이타(別府 大分) 마라톤에 참가, 2시간 08분 47초의 대기록(한국 최고 기록)을 세우면서 준우승을 하여 그 실력을 과시하였다. 드디어 같은 해 8월 9일에는 바르셀로나(스페인) 제25회 올림픽 대회에서 1936년 손기정(孫基禎) 선수의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제패 이후 56년 만에 다시 우승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만 따질 경우 사상 첫 금메달이다. 당시 바르셀로나 주 경기장 서쪽의 급경사 난코스인 '몬주익 언덕'에서 마지막 스퍼트를 통하여 2, 3위로 뒤쫓아오던 일본의 모리시타 고이치와 독일의 트로이강의 차이를 크게 벌리고 1위로 골인한 뒤 쓰러진 일화로 인해 '몬주익의 영웅'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봉주와 친구이자 라이벌 관계이다.
이어 1994년에는 보스턴 마라톤에 참가하여 한국최고 기록을 경신하는 2시간 08분 09초(4위)를 기록하여 건재함을 증명했고, 이 해 10월, 일본 히로시마(廣島)에서의 제12회 아시아 경기 대회에서도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따내, 국민의 영웅이 되었다.
1970년 3월 22일 강원도 삼척군 근덕면에서 태어났다. 강릉 명륜(明倫) 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 체육과를 졸업하고, 1990년 육상 경기에 입문하여 주로 트랙 장거리 종목에 뜻을 두고 단련했다. 그 해의 전국 체전의 5,000m, l0,000m에서 각각 2위에 입상하여 장거리의 기대주로 데뷔했다.
1991년 제62회 동아 마라톤 대회에 처음으로 출전, 2시간 12분 35초의 기록으로 3위에 입상하여 마라톤에서의 가능성을 보였다. 계속 트랙 장거리 종목을 통하여 실력을 쌓고 이 해 7월 영국 세필드에서의 하계 유니버시아드에 참가하여 2시간 12분 40초의 기록으로 당당히 우승했다. 한편 아시아 선수권 대회 10,000m, 일본 나가사키(長崎)의 규슈(九州) 역전 경주 구간에서 우승하는 등 단연 장거리에서 소질을 보였다.
1992년 2월에는 일본 벳푸 오이타(別府 大分) 마라톤에 참가, 2시간 08분 47초의 대기록(한국 최고 기록)을 세우면서 준우승을 하여 그 실력을 과시하였다. 드디어 같은 해 8월 9일에는 바르셀로나(스페인) 제25회 올림픽 대회에서 1936년 손기정(孫基禎) 선수의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제패 이후 56년 만에 다시 우승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만 따질 경우 사상 첫 금메달이다. 당시 바르셀로나 주 경기장 서쪽의 급경사 난코스인 '몬주익 언덕'에서 마지막 스퍼트를 통하여 2, 3위로 뒤쫓아오던 일본의 모리시타 고이치와 독일의 트로이강의 차이를 크게 벌리고 1위로 골인한 뒤 쓰러진 일화로 인해 '몬주익의 영웅'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봉주와 친구이자 라이벌 관계이다.
이어 1994년에는 보스턴 마라톤에 참가하여 한국최고 기록을 경신하는 2시간 08분 09초(4위)를 기록하여 건재함을 증명했고, 이 해 10월, 일본 히로시마(廣島)에서의 제12회 아시아 경기 대회에서도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따내, 국민의 영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