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11월 5일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났다. 3세 때 부모님을 따라 서울로 올라와 대동상업고등학교와 일본 동양음악전문학교를 수료햇다. 1945년 가수 김정구의 친형인 김용환이 이끄는 태평양악극단에서 아코디언 악사생활을 시작으로 연예계 활동을 시작했고, 백조가극단, 육군 군예대, 해병대 군예대 등을 거치며 18년동안 악극단에서 활약했다.
1956년에는 '애정파도'로 영화에 데뷔하고, 1958년 출연한 영화 '오부자'가 크게 흥행하며 스타덤에 올랐고, '막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평범한 인상을 가졌지만 특유의 말솜씨와 재치로 관객들에게 웃음을 주었다. 1969년 MBC '웃으면 복이와요'를 통해 텔레비전 코미디 프로그램에 진출하면서 전성기를 맞았다. '막둥이 구봉서'로 불리며 비실이 배삼룡, 후라이보이 곽규석, 살살이 서영춘, 합죽이 김희갑 등과 함께 60∼70년대 한국 코미디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일요일밤의 대행진', '주말코미디극장', '코미디세상만사'와 같은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활약했고, TV드라마와 라디오에도 출연했다.
또한 '구봉서의 벼락부자'(1961),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 '단벌신사'(1968), '구봉서의 구혼작전'(1970), '형님 먼저 아우 먼저'(1980) 등에 출연하여 30여 년간 400여편의 영화에서 희극배우로 활약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한국 기독연예인선교단' 회장을 맡기도 했다. 1992년 옥관문화훈장을 받았고, MBC 코미디언부문 명예의 전당(2000), 제13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연예예술발전상(2006), 제1회 대한민국 희극인의 날 자랑스러운 스승님상(2009) 등을 수상했다. 1997년에는 자서전 '코미디 위의 인생'(1997)을 출간했다.
1926년 11월 5일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났다. 3세 때 부모님을 따라 서울로 올라와 대동상업고등학교와 일본 동양음악전문학교를 수료햇다. 1945년 가수 김정구의 친형인 김용환이 이끄는 태평양악극단에서 아코디언 악사생활을 시작으로 연예계 활동을 시작했고, 백조가극단, 육군 군예대, 해병대 군예대 등을 거치며 18년동안 악극단에서 활약했다.
1956년에는 '애정파도'로 영화에 데뷔하고, 1958년 출연한 영화 '오부자'가 크게 흥행하며 스타덤에 올랐고, '막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평범한 인상을 가졌지만 특유의 말솜씨와 재치로 관객들에게 웃음을 주었다. 1969년 MBC '웃으면 복이와요'를 통해 텔레비전 코미디 프로그램에 진출하면서 전성기를 맞았다. '막둥이 구봉서'로 불리며 비실이 배삼룡, 후라이보이 곽규석, 살살이 서영춘, 합죽이 김희갑 등과 함께 60∼70년대 한국 코미디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일요일밤의 대행진', '주말코미디극장', '코미디세상만사'와 같은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활약했고, TV드라마와 라디오에도 출연했다.
또한 '구봉서의 벼락부자'(1961),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 '단벌신사'(1968), '구봉서의 구혼작전'(1970), '형님 먼저 아우 먼저'(1980) 등에 출연하여 30여 년간 400여편의 영화에서 희극배우로 활약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한국 기독연예인선교단' 회장을 맡기도 했다. 1992년 옥관문화훈장을 받았고, MBC 코미디언부문 명예의 전당(2000), 제13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연예예술발전상(2006), 제1회 대한민국 희극인의 날 자랑스러운 스승님상(2009) 등을 수상했다. 1997년에는 자서전 '코미디 위의 인생'(1997)을 출간했다.
2016년 8월 27일 오전 노환으로 별세했다. 묘소는 모란공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