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8월 20일 경기 시흥에서 태어나 서울 동명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40년 당시 15세의 나이로 동양극장 전속극단에서 연기를 배우기 시작해 같은 해 연극배우로 데뷔했다. 1941년 허영 감독의 '그대와 나'에서 단역으로 영화계에 발을 내밀었고, '장마', '마부' 등에 출연하다가 1949년 장황연 감독의 '청춘행로'에서 며느리 역할을 맡으며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1960년에는 강대진 감독의 '박서방'에서 처음으로 어머니 역할을 맡아 한국적 어머니의 모습을 연기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김약국의 딸들'(1963), '장남'(1984) 등을 비롯해 43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이는 한국 여배우 중 최대 기록이다. 그뿐만 아니라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 등 250편이 넘는 연극 무대에도 올랐다. 1986년 '88짝궁'을 마지막으로 배우생활을 접었다. 많은 영화에서 어머니 역을 맡아 따뜻한 연기를 선보이며 '한국 영화의 어머니'로 불리웠으며, 뛰어난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영화 '사랑'(1957)을 통해 제1회 한국평론가협회 최우수여우상, '혈맥'으로 대종상 ·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 밖에도 보관문화훈장(1992년), 대한민국 예술원상(2004년), 여성영화인상 공로상(2007년), 대종상영화제 공로상(2013년) 등을 받았다. 2007년에는 영화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신상옥, 유현목 감독에 이어 세 번째로 '영화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2005년부터 치매로 투병하다가 2014년 2월 17일 노환으로 향년 89세로 별세하였다.
1925년 8월 20일 경기 시흥에서 태어나 서울 동명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40년 당시 15세의 나이로 동양극장 전속극단에서 연기를 배우기 시작해 같은 해 연극배우로 데뷔했다. 1941년 허영 감독의 '그대와 나'에서 단역으로 영화계에 발을 내밀었고, '장마', '마부' 등에 출연하다가 1949년 장황연 감독의 '청춘행로'에서 며느리 역할을 맡으며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1960년에는 강대진 감독의 '박서방'에서 처음으로 어머니 역할을 맡아 한국적 어머니의 모습을 연기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김약국의 딸들'(1963), '장남'(1984) 등을 비롯해 43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이는 한국 여배우 중 최대 기록이다. 그뿐만 아니라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 등 250편이 넘는 연극 무대에도 올랐다. 1986년 '88짝궁'을 마지막으로 배우생활을 접었다. 많은 영화에서 어머니 역을 맡아 따뜻한 연기를 선보이며 '한국 영화의 어머니'로 불리웠으며, 뛰어난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영화 '사랑'(1957)을 통해 제1회 한국평론가협회 최우수여우상, '혈맥'으로 대종상 ·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 밖에도 보관문화훈장(1992년), 대한민국 예술원상(2004년), 여성영화인상 공로상(2007년), 대종상영화제 공로상(2013년) 등을 받았다. 2007년에는 영화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신상옥, 유현목 감독에 이어 세 번째로 '영화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2005년부터 치매로 투병하다가 2014년 2월 17일 노환으로 향년 89세로 별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