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유현목(兪賢穆)
  • 기계유씨(杞溪兪氏),  출생~사망 : 1925 ~ 2009
영화감독. 대표작은 '오발탄'. 호는 영산(詠山).

1925년 7월 2일 황해도 봉산군 사리원에서 태어나 고향의 덕성보통학교에 다녔다. 중학교 때 서울로 유학, 휘문중학교에 진학하였다. 어둡고 내성적인 성격이 예술적 지향과 만나 잠재되어 있던 예술적 본능이 드러나기 시작하여 문학뿐 아니라 음악, 미술, 무용 등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48년 동국대학교 국문과 시절 최초의 대학영화 서클인 "영화예술연구회"를 창립하여 '해풍'이라는 영화를 만들면서 영화 인생이 시작되었다.

1955년 '교차로'로 감독으로 데뷔하였으며, 어둡고 절망적인 사회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한국 영화사를 대표하는 영화 '오발탄'(1961)으로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그후 '아낌없이 주련다'(1962), '잉여인간'(1964), 종교적 고뇌를 영상화한 '순교자'(1965)와 '사람의 아들'(1980) 등 종교와 관련된 영화를 다수 연출하였다. 그의 영화에서 느껴지는 대체로 어둡고 음산한 분위기는 유년시절의 추억으로부터 나온 영향이다. 또한 '죄와 벌'에서 도스토옙스키의 인간과 사회를 파헤치는 예리한 관찰력과 소름이 돋도록 심오한 심리묘사는 영화세계의 기본 틀이 되었을 만큼 그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1976년부터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로 활동하다 1990년 정년퇴임하였다. 그해 살아 있을 때 각별했던 인연으로 인해 박정희 일대기를 담은 '조국의 등불'을 편집, 감독하였다. 1995년에는 '사람의 아들' 이후 15년 동안의 공백기를 보낸 뒤 70세가 된 나이에 만든 영화 '말미잘'로 영화인들의 기립 박수를 받으며 대종상에서 "영예로운 감독상"을 수상하였다.

그밖에도 서울시문화상,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예술원상, 대종상 등 30여 개의 수상경력과 더불어 문화훈장을 받기도 하였다. 그는 고통 속에서 피운 투철한 작가의식으로 독특한 영상을 창조해냈으며, 신과 인간의 실존적 문제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접근하였던 사회적 리얼리즘의 거장이다. 2009년 6월 28일 별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