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12월 20일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던 1968년에 경기도 고양으로 이주하였으며,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집안 형편이 어려워 기술을 배우라는 부친의 권유에 따라 중학교 진학을 포기했다. 전수학교와 전자공장을 다니며 20세까지 성장한 김기덕은 해병대에 부사관으로 임관하여 5년간 복무했다. 제대한 후 남산의 시각장애인교회에서 전도사로 일하는 동시에 신학교를 다니며 30세까지 서울에서 지냈다.
평소 그림에 대한 생각이 남달랐던 김기덕은 백남준과 관련된 기사가 동기가 되어 30세가 되던 1990년에 프랑스 파리로 떠났다. 1990년부터 1992년까지 3년간 프랑스와 유럽 각지를 다니며 스스로 회화 공부를 하던 중 우연히 들른 영화관에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영화를 보고 영화에 대한 꿈을 꾸게 되었다.
1992년에 귀국한 뒤 '화가와 사형수'로 1993년 영상작가교육원 창작 대상, '무단 횡단'으로 1995년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 대상을 받는 등 각본가로 활동하다가 1996년작인 '악어'를 통해 자신이 직접 감독하여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매우 잔인하고 어두운 영상과 내용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으며, 2004년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사마리아'로,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에서 '빈 집'으로 연이어 감독상을 받았다. 2012년 9월 8일, 제69회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에서 '피에타'로 황금사자상을 받으며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3대 국제 영화제 최고상을 받은 감독이 되었다. 비공식 부문에서는 3관왕에 올랐다.
1960년 12월 20일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던 1968년에 경기도 고양으로 이주하였으며,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집안 형편이 어려워 기술을 배우라는 부친의 권유에 따라 중학교 진학을 포기했다. 전수학교와 전자공장을 다니며 20세까지 성장한 김기덕은 해병대에 부사관으로 임관하여 5년간 복무했다. 제대한 후 남산의 시각장애인교회에서 전도사로 일하는 동시에 신학교를 다니며 30세까지 서울에서 지냈다.
평소 그림에 대한 생각이 남달랐던 김기덕은 백남준과 관련된 기사가 동기가 되어 30세가 되던 1990년에 프랑스 파리로 떠났다. 1990년부터 1992년까지 3년간 프랑스와 유럽 각지를 다니며 스스로 회화 공부를 하던 중 우연히 들른 영화관에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영화를 보고 영화에 대한 꿈을 꾸게 되었다.
1992년에 귀국한 뒤 '화가와 사형수'로 1993년 영상작가교육원 창작 대상, '무단 횡단'으로 1995년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 대상을 받는 등 각본가로 활동하다가 1996년작인 '악어'를 통해 자신이 직접 감독하여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매우 잔인하고 어두운 영상과 내용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으며, 2004년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사마리아'로,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에서 '빈 집'으로 연이어 감독상을 받았다. 2012년 9월 8일, 제69회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에서 '피에타'로 황금사자상을 받으며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3대 국제 영화제 최고상을 받은 감독이 되었다. 비공식 부문에서는 3관왕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