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전북 정읍시 상교동에서 아버지 임종구(林鍾球)와 어머니 김순례 사이의 5남1녀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1940년 이리농림학교를 졸업한후 고창군청 산업과로 발령받아 공무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1945년 해방 후에는 축산가공업, 피혁사업을 하기도 했다.
1955년 일본으로 건너가 1년여의 온갖 노력 끝에 조미료 제조공정을 익히고 부산으로 돌아왔다. 1956년 미원의 전신인 동아화성공업(주)를 설립한 그는 당시 감미료 원조 기술을 갖고 있던 일본에 맞서 순수 국내자본과 기술로 미원그룹(현 대상그룹)으로 키워냈다.
60년대 중반 국내 최초로 발효법에 의한 글루타민산 생산기술 개발에 성공함으로써 사실상 국내 바이오산업의 장을 열었다는 평을 받는다. 이후 임 창업회장은 L-글루타민산 나트륨, L-페닐알라닌, L-글루타민 등 20여 종의 아미노산과 핵산 등의 제조기술을 개발했다.
1987년 그룹회장직을 장남인 창욱씨에게 물려주고 일선에서 물러났다. 지난 2012년 식품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여받기도 했다.
1920년 전북 정읍시 상교동에서 아버지 임종구(林鍾球)와 어머니 김순례 사이의 5남1녀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1940년 이리농림학교를 졸업한후 고창군청 산업과로 발령받아 공무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1945년 해방 후에는 축산가공업, 피혁사업을 하기도 했다.
1955년 일본으로 건너가 1년여의 온갖 노력 끝에 조미료 제조공정을 익히고 부산으로 돌아왔다. 1956년 미원의 전신인 동아화성공업(주)를 설립한 그는 당시 감미료 원조 기술을 갖고 있던 일본에 맞서 순수 국내자본과 기술로 미원그룹(현 대상그룹)으로 키워냈다.
60년대 중반 국내 최초로 발효법에 의한 글루타민산 생산기술 개발에 성공함으로써 사실상 국내 바이오산업의 장을 열었다는 평을 받는다. 이후 임 창업회장은 L-글루타민산 나트륨, L-페닐알라닌, L-글루타민 등 20여 종의 아미노산과 핵산 등의 제조기술을 개발했다.
1987년 그룹회장직을 장남인 창욱씨에게 물려주고 일선에서 물러났다. 지난 2012년 식품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여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