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이한동(李漢東)
  • 고성이씨(固城李氏),  출생~사망 : 1934 ~ 2021
제33대 국무총리. 정치인.

1934년 12월 5일에 경기도 포천에서 아버지 이정호(李貞鎬)와 어머니 채병숙(蔡秉淑) 사이에서 4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가난한 환경에서 자라나 아버지를 대신하여 장남으로 생계를 맡기도 했다.

1947년에 포천청성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상경하여 경복고를 졸업하였다. 학창시절 내내 우수한 성적으로, 가난한 환경에도 비관하지 않고 소년 가장으로 생업 전선에도 뛰어들었으나 그의 어려운 환경을 안타깝게 생각한 친척들의 도움으로 학비를 조달할 수 있었다.

서울대 법대 재학 시절에 입주과외를 하며 고등고시를 준비하는 학생 생활을 했다. 대학 재학 중 제10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응시하여 합격하였다. 그러나 시험을 치른 뒤 결과를 보지 못한 채 군에 입대하여 육군 이병으로 2차 구술시험에 합격하여 중위로 진급했다. 군 복무중인 1960년 27세에 대학 동기의 소개로 충남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숙명여대 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조남숙과 만나서 3개월만에 결혼하였다.

서울대 법대을 졸업하고 법관에 임용되어 서울지법 판사, 서울지검 부장검사, 특수 1부장을 지냈다. 서울지검 부장검사로 재직중이던 1980년 정계에 입문하라는 권고를 받았다. 고민 끝에 검사장 진급을 눈앞에 둔 이한동은 1981년 1월에 청와대 비서관으로부터 선거법 개정으로 신설된 민주정의당 연천군·포천군·가평군 지구당 위원장을 맡으라는 제의를 받아들여 정계에 입문하였다. 민정당 소속으로 제11·12·13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며, 민정당 사무총장과 원내총무를 거쳤다. 야당과의 타협을 거절하던 여당 내 강경파와는 달리 6·29 선언과 직선제 개헌, 5공 청산과 전두환의 국회 증언, 개혁 입법화와 제도화 등의 현대사 격변기에 총무를 맡으며 대화와 타협을 존중, 여야 의원들로부터 '이한동 총무학'이란 신조어가 생겨났다.

1988년 12월에 내무부 장관을 지냈다. 그 뒤 1990년 1월에 3당합당으로 민주정의당과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이 통합하여 민주자유당이 출범하자 민주자유당에 참여하였다. 3당합당 이후에도 김영삼과 비교적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제14, 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며 신한국당의 상임고문에 위촉되었다.

1997년에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하였으나 이회창, 이인제에 이어 3위에 그쳐 좌절되었다. 이후 한나라당의 대표가 되었으나 1999년에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였고 2000년에 제16대 총선에 출마하여 6선 의원이 되었고 자민련 수석부총재와 제33대 국무총리를 지냈다.

2002년에 자민련을 탈당하고 하나로국민연합이라는 독자정당을 만들어 제16대 대선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이후 법무법인 남명의 대표변호사로 선임되었고 통일교육협의회 초대 후원회장을 지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