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3월 10일 함경남도 함흥군 출생이다. 동경제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판사를 역임한 이충영(李忠榮)과 해방후 농림부차관을 지낸 강정택(姜鋌澤)의 여동생 강금복의 사이에서 큰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한국전쟁 당시 납북되었다.
서울고등학교를 거쳐 1956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 1961년에 학사학위를 받고 동 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7년~1978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전임강사·조교수·부교수, 1970년~1971년에는 미국 피츠버그 대학교 교환연구원, 1980년에는 서울대학교 학생처장, 1985년~1989년 한국형사정책학회 회장, 1988년~1990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학장을 지냈다. 교수로 재직하던 중 1995년에 제20대 총장에 취임하였고, 같은 해 삼성언론재단 이사장, 12월에 김영삼 정부의 국무총리로 전격 발탁되어 총장직을 사임하였다. 1996년~1997년 3월에 노사관계개혁추진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1997년 총리 퇴임 후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하였으나 낙선, 2000년 김윤환, 이기택 등과 함께 민주국민당을 창당하여 제16대 총선에 출마하였지만 낙선하였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8년~2000년에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백범기념사업회 회장을 지내는 등 대외 활동을 하였다. 그 외에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 새마을운동중앙회 회장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여권의 후보단일화를 위해 결단을 내려 12월 13일 후보직에서 사퇴했다.
1939년 3월 10일 함경남도 함흥군 출생이다. 동경제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판사를 역임한 이충영(李忠榮)과 해방후 농림부차관을 지낸 강정택(姜鋌澤)의 여동생 강금복의 사이에서 큰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한국전쟁 당시 납북되었다.
서울고등학교를 거쳐 1956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 1961년에 학사학위를 받고 동 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7년~1978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전임강사·조교수·부교수, 1970년~1971년에는 미국 피츠버그 대학교 교환연구원, 1980년에는 서울대학교 학생처장, 1985년~1989년 한국형사정책학회 회장, 1988년~1990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학장을 지냈다. 교수로 재직하던 중 1995년에 제20대 총장에 취임하였고, 같은 해 삼성언론재단 이사장, 12월에 김영삼 정부의 국무총리로 전격 발탁되어 총장직을 사임하였다. 1996년~1997년 3월에 노사관계개혁추진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1997년 총리 퇴임 후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하였으나 낙선, 2000년 김윤환, 이기택 등과 함께 민주국민당을 창당하여 제16대 총선에 출마하였지만 낙선하였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8년~2000년에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백범기념사업회 회장을 지내는 등 대외 활동을 하였다. 그 외에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 새마을운동중앙회 회장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여권의 후보단일화를 위해 결단을 내려 12월 13일 후보직에서 사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