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두번째 추기경. 세례명은 니콜라오. 1931년 12월 7일 서울 중구 수표동의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정원모(鄭元謨)와 이복순(루시아)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아버지 정원모는 광복 후 월북하여 북한 정부에서 공업성 부상(차관)을 지내다가 숙청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고등학교를 거쳐 1950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화학공학과 재학 중 6·25전쟁이 일어나자, 인간이 만든 문명의 이기가 생명을 파괴하는 현실을 목격하고 사제의 길로 들어섰다.
가톨릭대학교 신학과를 거쳐, 로마 우르바노대학교 대학원에서 교회법 석사 학위를 받은 후, 2000년 서강대학교에서 명예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1년 사제 서품을 받은 뒤, 성신고등학교 교사·부교장, 서울대교구 대주교 비서·상서국장을 지냈다.
1970년 청주교구장이 된 뒤, 같은 해 10월 최연소 주교로 서품되었다. 이후 (재)청주교구 천주교회 유지재단 이사장,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교회법위원장·총무·부의장·의장을 지냈다. 1998년 서울대교구장이 되면서 평양교구 교구장 서리를 겸임하는 한편, 서울대교구 유지재단 이사장, 학교법인 가톨릭학원 이사장, (재)평화방송 이사, 한국외방선교회 총재 등으로 활동하면서 한국 가톨릭 발전을 이끌었다.
일찍부터 추기경 재목으로 주목을 받다가, 2006년 3월 25일 한국인으로는 김수환 추기경에 이어 두 번째로 추기경이 되었다. 사회복지시설인 꽃동네(충북 음성) 설립에 많은 도움을 주었고, 평양교구장 서리로서 북한 교회 재건에도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2012년 5월 10일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정진석 추기경의 서울대교구 교구장주교직 은퇴를 받아들이고, 후임 교구장으로 서울대교구 보좌주교이자 총대리인 염수정 안드레아 주교를 새로운 서울대교구의 교구장으로 임명하였다.
교황청에서도 손꼽히는 교회법 분야의 대가로 '교회법 해설'(전15권)을 비롯해 '장미꽃다발'(1961), '말씀의 식탁에서'(1986), '간추린 교회법 해설'(1993), '우주을 알면 하느님이 보인다'(2003) 등 30여 권의 저서를 출간하였다.
중앙고등학교를 거쳐 1950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화학공학과 재학 중 6·25전쟁이 일어나자, 인간이 만든 문명의 이기가 생명을 파괴하는 현실을 목격하고 사제의 길로 들어섰다.
가톨릭대학교 신학과를 거쳐, 로마 우르바노대학교 대학원에서 교회법 석사 학위를 받은 후, 2000년 서강대학교에서 명예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1년 사제 서품을 받은 뒤, 성신고등학교 교사·부교장, 서울대교구 대주교 비서·상서국장을 지냈다.
1970년 청주교구장이 된 뒤, 같은 해 10월 최연소 주교로 서품되었다. 이후 (재)청주교구 천주교회 유지재단 이사장,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교회법위원장·총무·부의장·의장을 지냈다. 1998년 서울대교구장이 되면서 평양교구 교구장 서리를 겸임하는 한편, 서울대교구 유지재단 이사장, 학교법인 가톨릭학원 이사장, (재)평화방송 이사, 한국외방선교회 총재 등으로 활동하면서 한국 가톨릭 발전을 이끌었다.
일찍부터 추기경 재목으로 주목을 받다가, 2006년 3월 25일 한국인으로는 김수환 추기경에 이어 두 번째로 추기경이 되었다. 사회복지시설인 꽃동네(충북 음성) 설립에 많은 도움을 주었고, 평양교구장 서리로서 북한 교회 재건에도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2012년 5월 10일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정진석 추기경의 서울대교구 교구장주교직 은퇴를 받아들이고, 후임 교구장으로 서울대교구 보좌주교이자 총대리인 염수정 안드레아 주교를 새로운 서울대교구의 교구장으로 임명하였다.
교황청에서도 손꼽히는 교회법 분야의 대가로 '교회법 해설'(전15권)을 비롯해 '장미꽃다발'(1961), '말씀의 식탁에서'(1986), '간추린 교회법 해설'(1993), '우주을 알면 하느님이 보인다'(2003) 등 30여 권의 저서를 출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