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류 화가, 수필가. 전남 고흥 출생. 본명은 천옥자(千玉子)이다. 전남 고흥군에서 아버지 천성욱과 어머니 박운아의 1남2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현 전남여고) 재학 중 미술교사로부터 그림을 배웠고, 1941년 일본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에 입학해 일본화 고등과에서 사실적 데생법과 채색법을 익혔다. 이때부터 스스로 지어 붙인 경자(鏡子)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일본 유학 중이던 1942년 외할아버지를 그린 ‘조부(祖父)’, 1943년 외할머니를 그린 ‘노부(老婦)’라는 작품으로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연이어 입선했다. 1944년 도쿄 여자 미술 대학(女子美術大學)을 졸업하고, 귀국 후 결혼했고, 1946년 모교인 전남여고에서 미술교사로 일하며 학교 강당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1952년 부산에서 연 개인전에서 ‘생태’라는 작품을 발표하며 화단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35마리의 뱀이 한데 엉켜있는 이 그림은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소재와 구도로 화제를 일으켰고, 이로 인해 일약 스타작가로 떠올랐다. 1954년 홍익대학교 동양화과 교수로 임명되었으며, 1955년 대한미협전에서 작품 ‘정’으로 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1961년에는 국전(國展) 추천작가가 되었다.
1971년 서울시 문화상을 수상하고 천경자미술연구소를 세웠으며, 1972년 베트남전 종군화가로 파견되었다. 1974년 홍익대 교수직을 사임하고 1978년 대한민국예술원의 정회원이 되었으며, 1979년 대한민국예술원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1980년 인도·중남미 풍물전을 개최한 이후 1995년까지 개인전을 열지 않았다. 1983년에는 은관문화훈장을 수상하였다.
주요작품으로는 ‘생태’(1951), ‘여인들’(1964), ‘바다의 찬가’(1965), ‘청춘의 문’(1968), ‘길례언니’(1973), ‘고(孤)’(1974),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1976), ‘탱고가 흐르는 황혼’(1978), ‘황금의 비(1982)’, ‘막은 내리고(1989)’, ‘황혼의 통곡’(1995) 등을 꼽을 수 있다.
일본 유학 중이던 1942년 외할아버지를 그린 ‘조부(祖父)’, 1943년 외할머니를 그린 ‘노부(老婦)’라는 작품으로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연이어 입선했다. 1944년 도쿄 여자 미술 대학(女子美術大學)을 졸업하고, 귀국 후 결혼했고, 1946년 모교인 전남여고에서 미술교사로 일하며 학교 강당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1952년 부산에서 연 개인전에서 ‘생태’라는 작품을 발표하며 화단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35마리의 뱀이 한데 엉켜있는 이 그림은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소재와 구도로 화제를 일으켰고, 이로 인해 일약 스타작가로 떠올랐다. 1954년 홍익대학교 동양화과 교수로 임명되었으며, 1955년 대한미협전에서 작품 ‘정’으로 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1961년에는 국전(國展) 추천작가가 되었다.
1971년 서울시 문화상을 수상하고 천경자미술연구소를 세웠으며, 1972년 베트남전 종군화가로 파견되었다. 1974년 홍익대 교수직을 사임하고 1978년 대한민국예술원의 정회원이 되었으며, 1979년 대한민국예술원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1980년 인도·중남미 풍물전을 개최한 이후 1995년까지 개인전을 열지 않았다. 1983년에는 은관문화훈장을 수상하였다.
주요작품으로는 ‘생태’(1951), ‘여인들’(1964), ‘바다의 찬가’(1965), ‘청춘의 문’(1968), ‘길례언니’(1973), ‘고(孤)’(1974),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1976), ‘탱고가 흐르는 황혼’(1978), ‘황금의 비(1982)’, ‘막은 내리고(1989)’, ‘황혼의 통곡’(1995) 등을 꼽을 수 있다.
한편, 글재주도 뛰어나 다수의 수필집과 신문·잡지 기고글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