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이만섭(李萬燮)
  • 합천이씨(陜川李氏),  출생~사망 : 1932 ~ 2015
국회의장. 언론인. 호는 청강(靑江)

이만섭은 1932년 2월 25일에 대구에서 태어났다. 1951년에 연희대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하여 졸업한 후 동아일보에 입사하여 정치부 기자로 활약했다. 이후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하며 주일 특파원과 주미 특파원 등으로 활동한 뒤 5.16 군사 정변이 일어난 직후 발탁되어 1963년 대선 후보 박정희의 지지 유세와 찬조연설을 다녔다.

그 해 민주공화당 소속으로 제6대 국회의원에 전국구로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하였고, 그 후 제7~10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1968년에 개최된 국제의원연맹 제5차 총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였다. 국회에 사사건건 간섭하던 중앙정보부장 김형욱과 갈등을 겪었고 제4공화국 후반 중앙정보부장으로 권력을 휘두른 이후락과 김형욱을 연이어 탄핵하였고 박정희가 그의 의견을 수용하여 이들을 낙마시키기도 했다. 1979년 제10대 총선에서 대구시 중구·서구·북구에서 당선되었고 그해 민주공화당의 당무위원이 되었다.

1980년 민주공화당이 신군부에 의해 강제로 해산당하자 과거 민주공화당 출신과 유신정우회 출신 인사들을 주축으로 한 한국국민당의 창당에 참여하였다. 제11,12대 국회의원에 연속으로 당선되었고 1985년에 한국국민당의 총재를 지냈다.

하지만 한국국민당은 1987년 10월부터 소속 의원들이 대거 탈당하여 신민주공화당에 입당하며 점차 와해되기 시작했고 다음해 제13대 총선에서 본인을 비롯하여 모두 낙마하였다. 이후 한국국민당은 신민주공화당에 흡수되었다. 1990년에 3당합당으로 탄생한 민주자유당에 합류하였고 이후 제14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국회의장을 지내기도 하였으며, 그 후 민자당의 상임고문을 거쳐 신한국당의 제15대 국회의원으로 다시 당선되었다.

신한국당의 총재서리로 임명되었고, 1997년에 이인제를 지지하면서 신한국당을 탈당하고 국민신당의 총재가 되었으며, 김대중의 새정치국민회의와 합당을 추진하고 새정치국민회의 총재권한대행을 지내기도 했다.

그 뒤 새천년민주당 창당준비위원장을 지냈고, 창당 후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제16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다시 국회의장을 지냈다. 이 시기부터 국회법이 개정되어 국회의장은 당적을 가질 수 없게 되었으며 이만섭은 최초로 무당적 국회의장이 되었고 이는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04년 제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정계를 은퇴하였다. 2015년 12월 14일에 83세의 나이로 타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