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박근혜(朴槿惠)
  • 고령박씨(高靈朴氏),  출생~사망 : 1952 ~  
제18대 대통령 (재임 2013~2017.3). 정치인. 전 대통령 박정희(朴正熙)의 딸이다. 고령박씨 직강공파 30세손이다.

박근혜는 1952년 2월 2일에 대구광역시 중구 삼덕동에서 육군본부 작전‧교육국 작전차장 박정희 대령과 중등학교 교사 출신인 육영수(陸英修) 사이에서 태어났다. 육영수에게는 첫 소생이었으나 박정희는 이혼 경력과 전처소생의 장녀 박재옥이 있었으므로 박정희에게는 차녀가 된다.

서울장충초등학교에 입학하여 1964년 2월 졸업하였으며, 정몽준 전 국회의원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그의 초등학교 동창이다. 그 뒤, 카톨릭계 미션스쿨인 성심여자중학교를 거쳐 성심여자고등학교로 진학하였으며, 1970년 서강대학교 공과대학 전자공학과에 진학하여 1974년에 졸업하였다. 같은 해 프랑스 그르노블대학교에 입학하였다.

프랑스 유학 중이던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 행사에서 어머니 육영수가 재일 한국인 문세광의 저격으로 살해당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급거 귀국하였다. 육영수 사후 아버지 박정희는 재혼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영부인 역할을 대행하여야 하였다. 1975년부터 박정희가 추진한 새마을 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때 최태민이 그의 새마을 사업에 참여한 것이 후일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1979년 10월 26일 아버지 박정희가 살해당하자 며칠 뒤 청와대를 떠나 동생들을 데리고 서울특별시 신당동 사저로 돌아갔다. 박정희 피격 당시 슬퍼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하여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이후 1982년 박근혜는 육영재단, 1994년 정수장학회 등을 인수하여 운영하였다. 이후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정치적 발언은 삼가하며 육영재단과 정수장학회 일에 전념하였다.

1997년 12월 10일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제통화기금(IMF) 위기를 방관할 수 없다며 이회창 지지를 선언하며 한나라당에 입당하였다. 이후 이회창의 권유로 1998년 4월 2일 한나라당의 후보로 대구광역시 달성군의 제15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어 본격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제15~18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2000년 한나라당의 부총재로 선출되었지만 2002년 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회창을 비판하며 한나라당에서 탈당하였다. 이후 한국미래연합을 창당 하였으나 대선 전에 복귀하였다. 2002년 5월 12일 북한을 방문, 5월 13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 회담을 하고 5월 14일 돌아왔다.

2004년 3월 12일 한나라당이 다수(133석/273석)이던 제16대 국회에서 새천년민주당과 함께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 소추하였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과 이른바 차떼기 사건이 불거지면서 풍전등화의 상황에 놓인다. 결국 최병렬 대표마저 사퇴하게 된다.

2004년 3월 23일 한나라당의 당 대표가 되었다. 이후 제17대 총선에서 '천막 당사'를 이끌며 한나라당은 원내 1당의 자리는 내주었지만 121석을 차지하여 예상 외의 선전을 하였다. '탄핵 역풍 위기'에서 박근혜가 한나라당을 구해낸 것이다. 이때부터 박근혜의 영향력이 커지기 시작하면서, 잠재적 차기 대권 주자로 부상했다.

2005년 12월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직권상정하여 처리하였다. 당시 대표인 박근혜는 곧바로 장외 투쟁을 선언하고 거리로 나섰다. 당시 한나라당 내부에조차 회의적인 시선이 많았다. 하지만 박근혜 대표는 장외 투쟁을 계속했고, 결국 여야는 한나라당의 장외 투쟁 3개월 만에 사학법 재개정 논의에 합의하게 된다.

2006년 5월 20일 지방 선거 유세 중 신촌 현대백화점 앞에서 지충호가 휘두른 문구용 칼에 피습당하여 안면에 깊은 자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당원들에게 선거 판세를 물어보는 모습을 보여 오히려 당 안팎에서 높은 지지를 얻는 계기가 되었다.

2004년부터 이후 2006년 당 대표에서 물러날 때까지 치른 모든 선거의 승리를 이끈 박근혜는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명과 함께 박근혜의 영향력이 커지기 시작하면서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의 유력한 예비후보 중 하나였다. 그러나 대선 후보 경선에선 당시 이명박 후보에게 근소한 차이로 패한다.

2011년 12월부터는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내며 당 혁신 작업을 지휘하였고 2012년 제19대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후 새누리당의 대통령 선거 후보로 선출되어 2012년 12월 19일 실시된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51.6%의 득표율로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 득표율 48.0% 보다 많은 과반수의 득표로 당선되었다.

2013년 2월 25일 대한민국의 제18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으며, 이로써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자 1987년 대한민국 헌법 개정 이후 최초의 과반 득표 대통령, 최초의 이공계 출신 대통령, 최초의 독신 대통령, 부녀 대통령으로 기록되었다.

재임중인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에 이어 2015년 5월 '메르스 사태'가 발생하였으며, 2016년 2월에는 남북한 경제협력의 일환인 개성공단을 폐쇄허였다.

집권 4년째인 2016년 중반부터 최태민의 딸인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이 관련된 이른바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이 불거져 2016년 12월 3일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발의되어 12월 9일에 가결됨으로써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었으며,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에서 만장일치로 탄핵소추안이 인용되어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었다. 이로써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재임중에 탄핵으로 물러난 대통령이 되었다. 탄핵 후 3월 31일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대한민국의 전직 대통령 중 전두환, 노태우에 이어 세번째로 구속되었다.

2018년 4월 6일 오후 2시에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에서는 직권남용·강요 등 18개 혐의 중 16개가 인정되었으며, 징역 24년, 벌금 180억 원의 선고를 내렸다. 그러나 박근혜는 항소하지 않았다. 하지만 검찰 측이 항소를 하여, 상고심→파기환송심→재상고심을 거쳐 최종 징역 22년, 벌금 180억원, 추징금 35억원이 확정되었다. 만기일은 2039년 3월 10일이지만 2021년 12월 24일,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특별사면되었다.

저서로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더라면'(1993), '내 마음의 여정'(1995), '고난을 벗삼아 진실을 등대삼아'(1998), '나의 어머니 육영수'(1999),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2007) 등이 있다.

형제로는 여동생 박근령(朴槿令)과 남동생 박지만((朴志晩)이 있고, 이복언니 박재옥(朴在玉)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