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이하징(李夏徵)
  • 한산이씨(韓山李氏),  출생~사망 : 1686 ~ 1755
조선 후기의 역신(逆臣). 동래부사(東萊府使) 명준(明浚)의 아들이며, 신임사화 때의 역신 명언(明彦), 명의(明誼)의 조카이다. 1721년(경종 1)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1747년 나주목사로 있을 때 수관문제(輸款問題)로 동래에 유배되었고, 괘서사건을 일으킨 윤지(尹志)와는 사우관계(死友關係)를 맺었다. 나주괘서사건이 일어났을 때, 임국훈(林國薰), 이효식(李孝植) 등과 함께 연루되었는데, 임국훈이 관에 바친 상자 속에는 윤지와 서신교환을 한 사람 가운데 이하징의 서찰이 가장 많았으며, 그 내용 또한 친밀하여 골육과 같았다. 왕이 친국을 할 때 취상(就商: 윤지의 아버지)의 역적행위를 부인하다가 왕의 노여움을 얻어 종성으로 유배되었다가, 복주(伏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