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노성도(盧性度)
  • 광주노씨(光州盧氏),  출생~사망 : 1819 ~ 1893
조선 후기의 사인. 자는 치평(穉平). 호는 경은(敬隱). 조부는 노광승(盧光升)이고, 1819년(순조 19)에 노진경(盧進敬)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노익경(盧益敬)에게 출계하였다. 소재(○齋) 노수신(盧守愼)의 10대손으로 조상인 노수신을 기려 원래 거주하고 있던 경북 상주(尙州)를 떠나 노수신의 유배지였던 충북 괴산(槐山)의 연하동에 수월정(水月亭)을 짓고 연하구곡을 설정하여 연하구곡가(煙霞九曲歌)를 창작하였다. 그의이 작품은 주자(朱子)의 무이도가(武夷棹歌)의 형식과 시의를 수용한 것으로, 주자의 사상과 문학적 영향이 조선 후기 1800년대 중반까지 지속되었던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노성도는 성품이 뇌락(磊落)하고 호방하였으나, 시대의 상황을 비판하고 자연에 은거하였다. 그는 '선집요결(選集要訣)' 5책과 '선집요결별록(選集要訣別錄)' 1책의 저술을 남겼다.이 책들은 경전의 내용에 대하여 자신의 견해를 밝혀 놓은 논평집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를 통해 그의 경학관을 고찰할 수 있으며, 1800년대 중반 유학계의 한 조류를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선집요결'에는 그가 1871년(고종 8)에 창작한 가사 '여민락(與民樂)'이 수록되어 있어 1800년대 중반의 가사 작품의 경향도 살펴볼 수 있다. 그의 묘는 충북 괴산군 불정면 세평리 산 14번지에 있으며, 이복(李馥)이 비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