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사인. 자는 낙여(樂汝). 호는 이운(怡雲). 유회당(有懷堂) 권이진(權以鎭)의 5대손으로 아버지는 권대전(權大銓)이다. 부인은 고령신씨(高靈申氏) 신정구(申珽求)의 딸이다. 1894년(고종 31) 갑오식년사마시(甲午式年司馬試) 진사(進士) 2등에 합격하였다. 이후 국세(國勢)가 기울어 계속 고향에 머물며, 학문에 열중하였다. 시(詩)와 사(史)를 좋아하여, 시를 짓고 스스로 고전(古典)을 모방하였다. 또한 지방의 문인, 사인들과 더불어 국난(國難)을 한탄하며 자주 비분강개하였다고 전한다. 저서로는 '이운환필(怡雲煥筆' 9권과 '약하간계(藥下簡戒' 1권이 있는데, '이운환필'에는 망국의 한을 담은 노래가 다수 수록되어 있다. 1922년에 사망하여 대전시 중구 무수동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