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유치구(柳致球)
  • 전주유씨(全州柳氏),  출생~사망 : 1793 ~ 1854
조선 후기의 문인. 자는 내봉(來鳳), 후일에 고쳐서 명녕(鳴○, 鳴寧). 호는 소은(小隱). 안동 출신. 상문(相文)의 아들로 큰아버지인 두문(斗文)에게 입양되었으며, 어머니는 한양조씨(漢陽趙氏)이다. 작은아버지인 낙문(洛文)에게 수학하였는데, 고문이 난삽하였으나 막히는 바가 없었다. 그뒤 유건휴(柳建休)에게 청학(請學)의 글을 올렸다. 유건휴는 유장원(柳長源)의 문하에서 성리학에 침잠하였으며, 유장원은 '퇴도서절요 退陶書節要' 10권을 내고 소퇴계(小退溪)라고까지 추존받던 이상정(李象靖)의 고제(高弟)였으니, 유치구의 사상의 맥락은 실로 이황(李滉)에 근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827년(순조 27) 사마시에 합격하고 성균관에서 독학(篤學)하다가 부정과 부패로 일관되는 과거에 싫증을 느끼고 낙향하니, 이는 세태의 혼탁과 결합할 수 없는 그의 개결(介潔)한 성품 때문이었다. 그는 오직 학문에 전념하여 익힌 바를 궁행(躬行)하는 데 힘썼으며, 이때 '중용'과 '대학' 두 책을 특히 숙독하여 독지만편(讀至萬遍)이라는 기록까지 보였다. 그는 성리학자이면서 실천궁행하기에 진력을 다하여 선비의 학문이 이론에만 치우친 것을 개탄하고 실천하는 것을 귀하게 여겨, 비록 이치를 깨우쳤다 하여도 실천이 없으면 깨닫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창하여 선비의 학은 지행합일(知行合一)에 있음을 보이고 있어, 공론에 빠졌던 성리학에만 치우친 당시 유생과는 달리 실천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유고로 '소은집' 4권과 필사본 한문소설인 '천군실록 天君實錄'이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