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민충기(閔忠基)
  • 여주민씨(驪州閔氏),  출생~사망 : 1888 ~ 1932
조선 후기의 독립운동가. 자는 효서(孝恕). 호는 금포(錦圃). 1888년(고종 25) 회덕군수(懷德郡守)를 지낸 아버지 민병성(閔丙星)과 어머니 보성오씨(寶城吳氏)의 장자로 태어났다. 1907년(광무 10) 목릉참봉(穆陵參奉)을 지냈으며, 1910년 창명학교(昌明學校)를 설립하여 육영사업(育英事業)을 전개하였다. 1913년에는 일본을 유람하며 견문을 넓히기도 하였다. 그 후 1919년 군자금 5만원을 가지고 상해(上海) 임시정부에 망명하면서 본격적인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1921년에는 군자금 모금을 위해 국내에 잠입하여 활동하기도 하였다. 황해(黃海)와 함평(咸平) 일대를 중심으로 자금을 모금하였으며, 이후 원산(元山)에서 배를 이용하여 포항(浦項)에 도착하여 영주(榮州), 경주(慶州), 대구(大丘)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대구에 있는 화옥여관(花屋旅館)에서 왜경(倭警)에게 체포되어 1923년 징역 5년을 언도받고 함흥(咸興) 감옥에 수감되었다. 1927년 출옥한 뒤에도 독립운동을 계속하였는데, 1932년 청주(淸州)에 있는 일해여관(日海旅館)에서 45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후에 건국훈장 애국장(建國勳章愛國章)이 수여되었다. 묘소는 충북 보은군(報恩郡) 삼승면(三升面) 내망리(內望里) 성인봉(聖人峰) 아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