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의 충신. 호는 서재(西齋). 고려 중랑장 인충(仁忠)의 손자이다. 세종, 문종, 단종의 3조를 섬겨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이르렀다. 1455년(단종 3) 왕명으로 남방을 순시하고 돌아오려는데, 단종이 영월로 쫓겨갔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영월에 가서 복명하고, 고향 여산으로 돌아가 두문불출하다가 단종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깊은 산 속에 들어가 3년상을 마치고, 흥양(興陽) 마륜촌(馬輪村) 산정(山亭)에 숨어 지냈다. 10여년 뒤에 가족이 찾아냈으나 항상 술에 만취하여 산천을 돌아다니며 대성통곡하므로 모두들 미쳤다고 하였다. 그러다가 생애를 마쳤는데, 지금도 그곳을 서재동(西齋洞)이라 한다. 1793년(정조 17)에 충강(忠剛)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