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의 의인(義人). 자는 덕보(德甫). 호는 죽림(竹林). 1440년(세종 22)에 천거되어 녹사, 주부가 되었으나 모두 나가지 않았다. 1454년(단종 2)에 처음으로 종부시첨정(宗簿寺僉正)이 되었다. 1455년에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빼앗자 울분을 못이겨 조정에 나가지 않았다. 세조가 조정에 나올 것을 종용하였으나 병을 치료한다는 핑계로 나가지 않았다. 이듬해 성삼문(成三問), 박팽년(朴彭年) 등이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참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사건에 가담하지 못한 것을 스스로 한탄하다 끝내 자살하고 말았다. 관직을 박탈당하였으며 자손들도 백년 동안 벼슬길이 막혔다. 그러나 1789년(정조 13)에 관직이 추복되고, 뒤에 이조참판에 추증, 경주의 운곡서원(雲谷書院)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