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우희열(禹希烈)
  • 단양우씨(丹陽禹氏),  출생~사망 : ? ~ 1420
조선 초기의 관리. 음서(蔭敍)로 관직에 나아갔으나, 가계를 명확하게 알 수 없다. 1408년(태종 8)에 민무구(閔無咎) 사건에 관련되어 하옥되기도 하였으나 곧 풀려났으며, 이듬해 3월에는 제언(堤堰)수축을 통한 수리의 개발을 주장하여 태종 대의 수리시설 확장사업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1413년에는 충청도도관찰사의 직임을 띠고 조운(漕運)의 편의를 위하여 시도된 태안반도 운하개통사업, 즉 축제(築堤)사업을 주관하였으며, 그 이듬해에는 경기, 충청 양도의 권과농상사(勸課農桑使)로 나가 제언수축과 식상(植桑)의 일을 권장하였다. 1415년에 다시 충청도관찰사, 같은해 말에 경기도관찰사에 이어 판광주목사(判廣州牧事)가 되었다. 1418년 판청주목사로 있을 때 전국 각지에 제방과 관개시설의 목록을 갖추어 매년 수치하게 하고 경차관을 보내어 감독하게 하자는 건의를 올려 이를 실현시켰다. 김제 벽골제(碧骨堤), 부평 수용제(水桶堤) 등의 수축에 큰 공을 세웠으며 농업전문가로서의 활약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