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은사(隱士). 자는 약기(躍起). 호는 일재(逸齋). 인조 때 산림(山林) 지계(知誡)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이유간(李惟侃)의 딸이다. 효성과 학문이 뛰어나 효종이 세마, 주부, 좌랑의 직으로 불렀으나 모두 나아가지 않았으며, 평상복으로 경연에 참가하여 세상의 경탄을 샀다. 성리학 일변도로 흐르지 않았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학문이 넓었으며, 의학에까지 밝아 1659년(현종 즉위년) 영의정 정태화(鄭太和)에 의해 궁중 의약(議藥)에 참여시키자는 의견이 제시되었으나 지방에 거주하고 있었으므로 불허되었다. 죽은 뒤 경연관의 청으로 지평을 증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