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서리(胥吏). 아버지는 겸사복(兼司僕) 희룡(希龍)이다. 1637년 소현세자(昭顯世子)가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을 때 시강원서리로 배종하였다. 필선(弼善) 정뇌경(鄭雷卿)이 당시 조선인으로서 청나라의 통역이 되어 온갖 횡포를 자행하던 정명수(鄭命壽)를 제거하려 할 때 적극 참가하였다. 그러나 일이 누설되어 정뇌경과 함께 처형당하였다. 죽을 때에도 정명수를 편드는 조신들을 꾸짖었다. 처는 노비로서 20세에 과부가 되었으나 종신토록 수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