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사인. 자는 인노(仁老). 참판(參判) 황숙(黃璹)의 손자로 강화 마리산(摩利山) 서쪽에서 충현공(忠顯公) 이돈오(李惇五)와 함께 지내다가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피난민을 모아 의병을 조직하려하였으나 좌절되었다. 적이 이미 강화도성을 유린하고 추적하여 올 때 동쪽을 향하여 사은숙배(謝恩肅拜)한 다음 바다에 뛰어들어 자결하였다. 그의 모친 심씨와 부인 허씨 그리고 동생 둘도 따라 죽으니 황씨오절(黃氏五節)이라 일컬었다. 1675년(숙종 1)에 정문이 세워졌고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에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