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송윤(宋玧)
  • 진천송씨(鎭川宋氏),  출생~사망 : 1603 ~ ?
조선 중기의 사인. 자는 영중(塋中). 1603년(선조 36)에 선교랑(宣敎郞)을 지낸 송상질(宋尙質)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형은 송빈(宋玭), 송완(宋琬)이고, 동생은 송전(宋○), 송환(宋○)이다. 송완은 1618년(광해군 10) 무오식년사마시(戊午式年司馬試)에 생원 3등으로 합격하였으며,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청나라 군사가 부평을 침입하여 부평부 청사와 향교가 불에 타고 있는 것을 목격하자, 위험을 무릅쓰고 불길에 싸인 향교로 뛰어들어 공자를 비롯한 여러 성인들의 위패를 모시고 탈출해 나왔다. 그리고이 위패들을 공촌동 벌판에 은밀히 안치시켜 두었다가 전쟁이 끝난 뒤, 향교 자리에 가막을 짓고 봉안하여 찬사를 받았다. 1648년(인조 26) 무자식년사마시(戊子式年司馬試)에 생원 2등으로 합격하였다. 이어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 겸 오위도총부부총관(同知中樞府使兼五衛都摠府副摠官)이 되었다. 또한 향교 재건에도 공을 세워 '청금록(靑衿錄)'에 제1호로 등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