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백광홍(白光弘)
  • 수원백씨(水原白氏),  출생~사망 : 1522 ~ 1556
조선 중기의 문인. 자는 대유(大裕). 호는 기봉(岐峯). 아버지 세인(世仁)과 어머니 광산김씨의 장남으로 장흥 기산리에서 태어났다. 아우 광안(光顔)과 광훈(光勳) 및 종제 광성 등 한 집안 4형제가 모두 문장으로 칭송을 받았다. 1549년(명종 4) 28세로 사마양시(司馬兩試)에 합격하고, 1552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했다. 홍문관정자로 임명되고, 1553년 호당(湖堂)에 뽑혔다. 그뒤 1555년 봄에 평안도평사가 되어 '관서별곡'을 지어 그곳의 생활상과 자연풍물을 읊었다. 이듬해 1556년 가을에 병이 들어 벼슬을 내놓고, 귀성하는 도중 음력 8월 전라북도 부안에서 객사하였다. 천생자질이 뛰어나고, 뜻이 높아 효성과 우애가 극진하며 행실이 올바른 성품이었다. 자라면서 이항(李恒) 에게서 학업을 배우고, 김인후, 이이, 신잠, 기대승, 임억령, 정철 등과 같은 당시의 대문장가들과 도의로써 사귀었다. 특히 '관서별곡'은 정철이 지은 가사 '관동별곡'보다 25년이나 앞서 지은 작품으로 기행가사의 효시가 되어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1808년(순조 8) 기양사(岐陽祠)에 배향되었다. 저서로 '기봉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