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세종 때의 문신. 자는 양필(良弼). 호는 동악(東岳). 아버지는 도염서승(都染署丞) 갑생(甲生)이다. 1435년(세종 17) 식년정시(式年庭試)에 병과로 급제, 서승(署丞)이 되었고, 이듬해 중시(重試)에 발탁되어 사간원에 들어갔다. 1464년(세조 10) 승(僧) 원각(圓覺)이 왕에게 아뢰어 도성 안에 절을 짓고, 또 왕을 청하여 황곡사(篁谷寺)에 가자 그 옳지 못함을 상주하여 원각을 참수시킨 일이 있었다. 권귀(權貴)의 미움을 사서 함양군수로 좌천되었다가, 다시 고령현감이 되었다. 관직에서 물러나서는 학문연구와 후진교육에 전념하였다. 창녕서원에 제향되었으며, 저서로는 '동악고'가 '광주노씨세고 光州盧氏世稿'에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