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성종 때의 문신. 자는 군요(君饒), 자범(子汎). 호는 치헌(痴軒). 아버지는 판관 질이다.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다. 1483년(성종 14)에 진사가 되고, 1485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예문관검열에 등용된 뒤 홍문관정자를 거쳐, 1490년에는 호당(湖堂)에서 사가독서(賜暇讀書) 하였다. 여러 차례 천거되어 교리에 이르렀으며, 1495년(연산군 1)에는 외직을 청하여 제천현감이 되었다. 성종 때 김일손(金馹孫)과 함께 사관(史官)으로 있으면서 스승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사초(史草)에 실었는데, 이것이 문제가 되어 일어난 1498년의 무오사화 때 유자광(柳子光), 이극돈(李克墩) 등은 충의를 빙자하여 사당(私黨)을 조직하고 조의제문을 사초에 실어 후세에 전하려 하였으므로 그 죄가 김종직 보다 가볍지 않다고 주장하여 국문을 받은 뒤 아들 연(沇) 및 김일손, 권오복(權五福)과 함께 능지처사되었다. 중종반정 후 도승지에 추증되었다. 그는 남효온(南孝溫), 김일손, 강경서(姜景敍) 등과 함께 사장(詞章), 정사(政事), 절의(節義), 효행으로 이름이 높았다. 남효온은 '성품이 강의(剛毅)하고 일을 만들기를 즐기지 않았다.'고 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