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이제마(李濟馬)
  • 전주이씨(全州李氏),  출생~사망 : 1838 ~ 1900
조선 말기의 한의학자. 자는 무평(務平). 호는 동무(東武). 함경남도 함흥 출생.

어려서부터 비범한 재질을 발휘하여 '경사자집 經史子集' 뿐 아니라 의약과 복서(卜筮)에도 능통하였다. 평소부터 병법을 좋아하여 무인이 되기를 원하여 호를 동무 라고까지 지었다. 평소부터 '주역'을 애독하여 태극설(太極說)에 의한 태양(太陽), 소양(少陽), 태음(太陰), 소음(少陰)의 사상원리(四象原理)를 인체의 기질과 성격에 따라 사상인을 구분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오랫동안 연구를 거듭하면서 특히 의학분야에 정력을 기울였다.

1888년(고종 25)부터 1889년에 한때 군관직을 맡기도 하였으나 곧 사퇴하고, 1892년 경상남도 진해현감에 임명되었는데 재임중에 쇠퇴되어가던 관기를 바로잡는 데 힘쓰는 한편 그 현민들을 대상으로 평소부터 연구하여 오던 사상인의 원리를 실천에 옮겨보기도 하였다.

1893년 7월 진해현감을 사직하고 서울로 돌아와 사상의서의 저술에 착수하여 밤낮으로 심혈을 기울여 다음해 4월에 '동의수세보원' 상하 2권을 끝냈다. 이 책을 끝마친 다음해인 1895년 고향 함흥으로 돌아가서 어머니의 병환을 간호하면서 한편으로는 의업에 종사하였다. 1896년 함흥에서 일어났던 최문환(崔文煥)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고원군수에 추천되었으나 끝내 부임하지 않고, 사상의설(四象醫說)연구와 문하생들을 지도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리하여 1900년에 다시 '동의수세보원'을 개편하기 시작하였으나, 그 일을 끝내지 못하고 그해 함흥에서 죽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다음해 6월에 그의 문인들이 모여 생전에 개편을 끝내지 못하였던 '동의수세보원'의 증보판을 출판하였다.이 증보판은 성명론(性命論), 사단론(四端論), 확충론(擴充論), 장부론(臟腑論), 의원론(醫源論), 광제론(廣濟論), 사상인변증론(四象人辨證論) 등 7편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 주장하는 사상인들의 분류는 한의방의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질병치료에 대한 사상인들의 체질 및 성질의 차이를 논한 것이다. 질병치료에 있어 병증보다는 도리어 체질에 중점을 두어 사상인들이 같은 병에 걸리더라도 치료방법을 같이하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한대(漢代)의 장중경(張仲景)의 '상한론 傷寒論'에는 체질과는 아무 관계 없이 음증에는 온열재인 인삼, 부자, 당귀(當歸) 등을 주로 쓰고, 양증에는 냉재인 석고(石膏), 대황(大黃), 망초(芒硝), 시호(柴胡) 등을 주재로 한다는 점과는 그 취급방법이 매우 다르다. 이것은 종래의 한방의학의 전통을 깨뜨린 새로운 법방을 제시한 것이다. 즉, 같은 병이라도 환자의 체질에 따라 처방을 달리하여야 한다는 이론이다. 저서로는 '동의수세보원'과 '격치고 格致藁'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