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말기의 유학자. 자는 경교(景敎). 호는 추강(秋江). 충청남도 보령 출신. 병조참판 홍수(弘洙)의 아들이다. 1880년(고종 17) 개화를 반대하는 척사상소를 올려 체포되었다가 곧 석방되었다. 1881년에도 청주에서 한홍렬(韓洪烈)과 함께 충청도 유림의 명의로 척사상소를 올리려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1882년 6월 단독으로 서울 남산에 봉화를 올리고 척사상소를 제출하여 또다시 체포, 투옥되었다. 같은해 7월 임오군란을 일으킨 군졸들이 그의 석방을 요구, 주선함에 따라 의금부에서 풀려나 군졸들로부터 '백충신(白忠臣)'으로 추앙받았다. 그러나 청나라 군사의 개입으로 군란이 진압되고, 정언(正言)을 지낸 김재봉(金在鳳)의 상소로 다시 체포되어 제주도에 유치되었다가 처형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