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이근택(李根澤)
  • 전주이씨(全州李氏),  출생~사망 : 1865 ~ 1919
조선 말기의 대신. 을사오적의 한 사람. 친일파. 초명은 근용(根). 충청북도 충주 출신.

1882년(고종 19) 민비(閔妃)가 난을 피하여 충주에 갔을 때 신선한 생선을 민비에게 진상함으로써 민비와 알게 되었다. 얼마 뒤 흥선대원군이 청나라 톈진(天津)에 호송되고 제물포조약이 체결되자 민비가 환궁하면서 1883년 남행선전관으로 임명되었다. 1884년 무과에 급제한 뒤 1885년 선전관이 되었으며, 그뒤 1886∼1895년까지 단천부사, 희천군수, 당상선전관, 길주목사, 충청수사, 전라병사, 총어영사, 한성부우윤, 병조참판, 금군별장, 부평부사, 좌부승지 및 친위대 제3대대장을 역임하였다. 1896년 육군참령에 임명되어 아관파천 때 이창렬(李彰烈) 등과 통모하여 협가환어(脅駕還御)의 계획을 세웠으나 이용태(李容泰)의 고발로 제주도에 유배되었으며, 1897년 민영기(閔泳綺)의 노력으로 석방되었다. 1898년 독립협회를 반대하고 그 회의 해산에 공이 있다 하여 11월 한성부판윤에 오르고 곧 경무사에 임명되었다. 이듬해 함경북도관찰사, 중추원의관, 1901년 경부협판, 경부대신서리를 거쳐 육군참장으로 헌병사령관을 겸임하였다. 1902년 평리원 재판장서리, 의정부찬정, 경위원총관(警衛院總官)을 거쳐 원수부 검사국총장으로 경무사를 겸임하였다. 그 이듬해에 육군부장, 군부대신, 원수부 회계국총장, 특명전권공사 등을 거쳐 1904년 호위대총관, 궁내부특진관을 역임하였다. 1905년 주전원경(主殿院卿), 시종무관장(侍從武官長), 농상공부대신, 법부대신이 되고, 이어 일본국 훈1등욱일대수장(勳一等旭日大綬章)을 받고, 9월 군부대신이 되어 그해 11월 을사조약의 체결에 찬동하여 5적신의 한 사람으로 지탄을 받게 되었으며, 민중의 피습을 당하기도 하였다. 1906년 4월 훈1등태극장을 받고 그해 11월 중추원의장이 되었으며, 1907년 중추원고문으로 전임하였다. 1910년 8월 우리나라가 일제에게 병탄되자 이에 협조하여 일본 으로부터 자작의 작위를 받고, 그해 10월 조선총독부 중추원고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