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정낙용(鄭洛鎔)
  • 연일정씨(延日鄭氏),  출생~사망 : 1827 ~ 1914
조선 말기의 대신, 친일파. 자는 경구(景龜). 방어사 인기(寅基)의 아들이다. 1855년(철종 6) 4월 무과에 급제, 1857년 6월 선전관, 이듬해 12월 사복내승(司僕內乘), 1861년 수안군수, 이어 1863년에는 태안군수를 지냈으며, 1865년(고종 2) 6월 치적에 의해서 통정대부(通政大夫) 정3품에 올랐다. 이듬해 같은 군의 부사에, 1867년 5월 전라도좌수사에 전임, 10월에는 우부승지, 1868년 10월 죽산부사, 1870년 9월 전라도수사, 1874년 남양부사로 전임되었으며, 1878년 가선대부(嘉善大夫) 종2품에 올랐다. 1879년 1월 통제사, 1882년 6월 부총관, 이듬해 4월 병조참판, 1885년 7월 좌포장(左捕將), 8월에는 후영사(後營使), 이어 협판내무부사(協辦內務府事)를 역임, 1886년 2월 전환국총판(典○局總辦)이 되고, 이로써 자헌대부(資憲大夫) 정2품에 올랐으며, 3월에는 공조판서를 역임하였다. 1887년 9월 정헌대부(正憲大夫) 정2품에 올랐고, 12월에 형조판서, 1888년 강화유수, 1894년 5월 한성판윤, 1896년 5월 중추원의관의장대변(中樞院議官議長代辨), 1897년 7월 시종원경(侍從院卿), 10월에 농상공부대신, 11월에는 탁지부대신서리를 지냈고, 12월에는 숭정대부(崇政大夫) 종1품에 올랐다. 1899년 10월 중추원의장(中樞院議長)을 지냈고, 1902년 3월 숭록대부(崇祿大夫) 종1품에 올랐다. 1904년 9월 궁내부특진관(宮內府特進官) 등을 역임하였다. 1910년 우리나라가 일제에 강제로 병탄되자 일본 으로부터 남작의 작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