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광해군 때 옥사로 죽은 사람. 자는 경어(景魚). 조선조 개국공신인 익원공(翼元公) 김사형(金士衡)의 후손으로 충민공(忠愍公) 김흠(金欽)의 아들이다.
1585년(선조 18)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하고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 박사(博士) 등을 역임하였다. 선조 때 성균관학록으로 있다가 그만두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적에게 팽살(烹殺)당한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다고 하여 기복종군(起復從軍)하였는데, 토적(討賊)에는 마음을 쓰지 않고 상중의 선비가 고기와 술을 마음대로 먹고 마셔 양반의 체통을 잃었다고 하여 직첩(職牒)이 환수되었다. 광해군 때는 다시 늙은 어머니를 학대했다 하여 돌려받았던 직첩을 다시 환수당하였다.
1612년 아들 백함(白緘)이 왕을 제거하고 진릉군(晉陵君) 태경(泰慶)을 추대하려는 역모에 연루되어 능지처사되고 가산이 적몰되었다. 이것이 이른바 김직재의 옥으로 이어지는 대, 소북파 사이의 정쟁(政爭)에 당시 불평객이었던 이들 부자가 희생된 무옥(誣獄 : 무고로 일어난 옥사사건)이었다.
1585년(선조 18)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하고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 박사(博士) 등을 역임하였다. 선조 때 성균관학록으로 있다가 그만두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적에게 팽살(烹殺)당한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다고 하여 기복종군(起復從軍)하였는데, 토적(討賊)에는 마음을 쓰지 않고 상중의 선비가 고기와 술을 마음대로 먹고 마셔 양반의 체통을 잃었다고 하여 직첩(職牒)이 환수되었다. 광해군 때는 다시 늙은 어머니를 학대했다 하여 돌려받았던 직첩을 다시 환수당하였다.
1612년 아들 백함(白緘)이 왕을 제거하고 진릉군(晉陵君) 태경(泰慶)을 추대하려는 역모에 연루되어 능지처사되고 가산이 적몰되었다. 이것이 이른바 김직재의 옥으로 이어지는 대, 소북파 사이의 정쟁(政爭)에 당시 불평객이었던 이들 부자가 희생된 무옥(誣獄 : 무고로 일어난 옥사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