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명필. 자는 태수(○○). 호는 고산(孤山), 매학정(梅鶴亭). 1534년(중종 29)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벼슬은 별좌에 그쳤다. 특히, 초서를 잘 써서 '초성(草聖)'으로 불렸다. '근묵 槿墨' 등에 약간의 진적이 전하며, '관란정첩 觀瀾亭帖', '대동서법 大東書法' 등에 필적이 모각되어 있다. 이밖에 현전하는 '고산서첩 孤山書帖'은 이백(李白)이 쓴 '회소상인초서가 懷素上人草書歌'를 석각(石刻), 탁본한 것으로(1549년 씀.), 필치가 당나라 회소(懷素)의 '자서첩 自敍帖' 중 광초(狂草)를 방불한다. 금석으로 충주의 이번신도비(李蕃神道碑, 1555)가 있다. 조선시대 서예사에서 초서로는 김구(金絿), 양사언(楊士彦)과 함께 제1인자라는 평을 받아왔으며, 후대에 크게 영향을 미쳐 비슷한 풍이 유행하기도 하였다. 저서에 '고산집'이 있다. 아우인 영로(榮老)도 초서를 잘 썼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