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화가. 자는 도경(道卿). 호는 남리(南里), 운천(芸泉). 사과(司果) 효강(孝綱)의 아들이며, 화원 함제건(咸悌健)의 외손자이다. 화원으로 도화서별제(圖畵署別提)를 지냈다. 전통적인 북종화법을 따르면서도 남종화풍과 서양화법을 수용한 작품을 남겼다. 산수, 인물, 풍속, 영모(翎毛) 등 여러 방면의 소재에 능숙하였고, 신장도(神將圖)도 잘 그렸다. 현존하는 작품 가운데 전통화법을 따른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것은 49세 때인 1744년(영조 20) 그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월야산수도 月夜山水圖'이다.이 작품은 해조묘(蟹爪描)의 수지법(樹枝法), 바위와 언덕의 준법(○法), 급류로 표현된 계곡, 구도 등으로 전형적인 명나라의 북종화 계통을 따르고 있다. '월야산수도'와 같은해 봄에 그린 작품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춘하도리원호흥도권 春夏桃李園豪興圖卷'과 '추동전원행렵도권 秋冬田園行獵圖卷'은 긴 횡축(橫軸)의 사계풍속화(四季風俗畵)인데, 이 작품의 산수 표현에는 남종화풍의 영향도 엿보인다. 그의 작품에서 새로운 서양화법의 수용을 보여주는 화제(畵題)는 동물화이다. 흑구도 黑狗圖'와 '자웅견장도 雌雄犬將圖', 그리고 황소와 낮잠 자는 목동을 그린 '목우도 牧牛圖' 등은 입체적인 음영법을 구사한 사실적인 묘사를 보이고 있다. 이것은 새로운 화법으로서, 당시 청나라 로부터 유입된 서양화풍의 수용을 시사해준다. 당시에 서양화풍의 유입을 알려주는 대표작으로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맹견도 猛犬圖'가 있는데, 그의 동물화는이 그림의 필치와 유관함을 보여준다. 이밖에 인물화로서 강세황(姜世晃)의 화평(畵評)이 있는 '고사몽룡도 高士夢龍圖'는 그가 신장도에 뛰어났음을 보여준다. 화원으로서 별제에 발탁되었고, 영조의 총애를 받아 남리 라는 호를 직접 하사받았던 것으로 보아 화원으로서의 평가가 대단히 높았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