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조세걸(曺世傑)
  • 창녕조씨(昌寧曺氏),  출생~사망 : 1635 ~ ?
조선 중기의 화가. 호는 패천(浿川). 김명국(金明國)의 제자로 산수화에 능하였고 벼슬은 첨사를 지냈다. 집안이 넉넉하여 서화를 즐겼는데 중국의 이름난 작품들을 많이 모아 여러 칸이나 되는 서재에 가득 찼다 한다. 화풍은 정교하고 채색을 즐겨 썼는데 중국 그림을 모방하여 중국화풍과 닮은 데가 있었다. 처음 평양에서 왔을 때 장안이 떠들썩하도록 많은 사람들이 병풍을 들고와 그림을 그려달라고 하였다 한다. 그무렵(1682년경)노론계 사대부였던 김수증(金壽增)의 부탁을 받고 지금의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에 있는 곡운구곡(谷雲九曲)으로 들어가 제1곡 방화계(傍花溪)로부터 제9곡 첩석대(疊石臺)까지 그렸다.이 그림은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우리나라 구곡도(九曲圖)들 중에서 가장 상세하게 그 제작동기와 유래가 전하는 작품이다. 그뒤 김수증이 주자(朱子)의 '무이구곡도가 武夷九曲櫂歌'의 운(韻)을 그의 아들과 조카들에게 나누어주고 차운(次韻)하게 하여 그 시들을 그림과 함께 화첩으로 꾸며놓았다. 김명국을 사사한 그는 화풍도 절파화풍(浙派畵風)을 따랐는데, 이를 뒷받침하여줄만한 작품이 많이 전하지 않는다. 그의 성격에 대한 일화와 현재 전하고 있는 작품들에는 다소 서로 모순되는 점들이 있다. 구체적으로는, 절파풍의 산수화와 세밀한 실경화(實景畵), 그림을 그리기 전에 술을 청하여 마시고 나서 붓을 잡았다는 것과 정교한 필치와 선명한 색채를 썼다는 말 등이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