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박노술(朴魯述)
  • 순천박씨(順天朴氏),  출생~사망 : 1851 ~ 1917
조선 후기의 학자. 호는 석음(石陰). 광주광역시(光州廣域市) 광산구(光山區) 안청(安淸) 출생으로 안호(安湖) 박제방(朴濟邦)의 손자이자 관어헌(觀魚軒) 박양동(朴陽東)의 아들이다.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당시 추앙받은 문학절의(文學節義)로 세속과의 인연을 끊고서 자신이 지은 율리전사(栗里田舍)에 숨어 살면서 제자를 양성하였다. 1895년(고종 32) 을미사변(乙未事變)이 일어나자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 선생이 일으킨 의병활동에 참여하였으며, 당시의 격서(檄書)가 '존화록(尊華錄)'과 '석음유고(石陰遺稿)' 등에 전한다. 1910년 한일 합방 이후, 두문불출하였고 일제가 보내온 소위 은사금칙첩(恩賜金勅帖)을 거절하였다. 안청동 계안부락에 풍천대(風泉臺)를 짓고 망곡(望哭)하려 했으나 일제의 방해로 실패하였는데 이를 본 문인들이 제향하였다. 그의 문집 '석음유고'가 현재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