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김정묵(金正默)
  • 광산김씨(光山金氏),  출생~사망 : 1739 ~ 1799
조선 후기의 학자. 호는 과재(過齋). 김장생(金長生)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위재(偉材)이며, 어머니는 파평윤씨로 참봉 휴경(休耕)의 딸이다. 재당숙인 기재(驥材)에게 입양되었으며, 양어머니는 진주유씨(晉州柳氏)로 전적(典籍) 상휘(尙徽)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학업에도 충실하였으며, 능히 과장(科場)에 나갈 수 있었으나 할아버지인 운택(雲澤)이 신임사화에 연루되어 벼슬에서 물러난 것을 보고 벼슬하기를 꺼려 학문에만 힘썼다. 1780년(정조 4) 도천(道遷)으로 돈령부참봉(敦寧府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았고, 다시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경연서연관(經筵書筵官) 등에 제수되었으나 그때 족친인 김하재(金夏材)의 역변(逆變)이 있었으므로 끝내 사퇴하였다. 그는 경전 외에도 '심경 心經', '근사록 近思錄', '성학집요 聖學輯要'를 강론하면서 후진양성에 전념하였다. 그는 성리학 예설(禮說)에 밝았으며, '남당집 南塘集' 중 심성(心性), 이기(理氣), 예설 등에 관한 한원진(韓元震)의 논술이 이이(李珥), 송시열(宋時烈)의 본뜻에 많이 위배됨을 지적, 고증을 들어 변증하는 '규도수록 圭刀隨錄'을 저술하였다. 저서로는 '과재유고' 11권 5책이 있다. 초명은 두묵(斗默), 자는 이운(而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