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학자. 자는 휴문(休文). 호는 소산(小山). 아버지는 태화(泰和)이고, 어머니는 재령이씨(載寧李氏)로 주부 재(栽)의 딸이며, 상정(象靖)은 그의 형이다. 1728년(영조 4) 김일경(金一鏡)의 여당(餘黨)인 이인좌(李麟佐) 등이 밀풍군(密豊君) 탄(坦)을 추대하고 난을 일으키자, 아버지와 종숙(從叔)들이 의병을 모아 병영(兵營)으로 쳐들어갈 때 겨우 15세의 어린 나이로 종군하였다. 이때 영장(營將)이 나이가 어리다고 돌려보내려 하였으나, ' 당태종은 16세에 군영에 들어가서 나라에 충성을 바쳤는데, 내 나이가 어찌 어리다 하오○' 하며 끝까지 항의하여 종군을 허락받았다. 어려서부터 이황(李滉)의 학풍을 추모한 나머지 형 상정의 지도를 받아 성리학을 공부하였는데, 특히 사단칠정(四端七情)의 이치를 강구하는 데 힘썼으며, '근사록'의 천리(天理)와 인욕(人欲)의 동행이정(同行異情)한 이치를 터득하였다. 또, 그 지방의 석학인 조명천(趙命天), 이평중(李平仲), 조성여(趙聖與) 등과 교유하면서 '심경'을 강론하였고, 최여호(崔汝浩), 최진숙(崔進淑), 최입부(崔立夫), 김희주(金熙周) 등과도 서신을 통해 성리학을 강마하는 한편 당시 학자에 따라 구구하던 예설(禮說)을 총정리하였다. 그가 정리한 예설은 당시 안동 지방의 표준으로 시행되었다. 저서로 '소산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