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학자. 자는 회보(晦甫). 호는 만보정(○○亭). 예조참판 사정(師正)의 아들이다. 1738년(영조 14) 영조의 제3녀 화평옹주(和平翁主)에게 장가들어 금성위(錦城尉)에 봉하여졌으며 영조의 깊은 사랑을 받았다. 처음 순의대부(順義大夫)를 받았으나, 뒤에 유록대부(綏祿大夫)에 승진되었다. 글씨를 잘 써서 나라에 경사나 슬픈 일이 있을 때면 금옥보책명정서관(金玉寶○銘旌書官)이 되었는데, 모두 10여 차례에 이르렀다. 1776년(영조 52) 삼절연공 겸 사은사(三節年貢兼謝恩使), 1780년(정조 4) 진하 겸 사은사, 1784년 사은사 등 세 차례에 걸쳐 중국에 정사로 파견되었다. 몸가짐에 절도가 있었으며, 검소하였고 또한 풍류와 운치가 있었다.